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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3 19:03 수정 : 2014.04.24 09:36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전문의

이 푸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뜰에는 아직 낮의 밝음이 남아 있습니다.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나날이 푸르러 갑니다. 청출어람이청어람, 푸름은 쪽빛에서 나왔는데 쪽빛보다 더 푸르구나. 이 향기로운 봄, 미처 푸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우리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 깊고 검은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불효가 무엇일까?” “저요! 저요!”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 선생님 질문에 우리들은 바삐 손을 들었습니다. “말 안 듣는 거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지요. “공부 못하는 거요.” 고개를 또 저었지요. “나쁜 짓 해서 부모 욕먹이는 거요.” “감옥 가는 거요.” 선생님은 계속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픈 거요.” “그거 비슷하구나.” 마침내 누군가 정답을 맞혔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거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졸지에 불효자 불효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갑판으로 나와 물로 떨어지기만 했어도 건져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민간어선들이 해경보다 먼저 와서 세월호와 1미터 간격을 두고 서성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 아이들은 갑판으로 나오지 않았을까요? 왜 대피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시간에 선실 옷장에 칸칸이 들어가 앉아 가만 웅크리고만 있었던 것일까요?

본능은 무엇이었을까요? 배 기울면 기우는 반대쪽으로 얼른 옮겨가는 것이 동물적 본능입니다. 상식은 무엇이었을까요? 구명조끼 찾아 입고 구명보트 가까이 가서 만일에 대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본능도 상식도 접어둔 채 어이없는 지시를 따르고 말았습니다.

“학교 가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밖에 나가선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아아, 대체 우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말 잘 듣는 법만 가르치고 말 안 듣는 법은 미처 가르치지 못하였습니다. 침착하게 안내방송 잘 듣고 시키는 대로 따랐던 곱디고운 우리 아이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선실에 갇혀 그대로 죽어갔습니다. 시킨 대로 가만있으면 구조해주러 오리라 믿었던 어른들은 침몰 사흘이 지나도록 나타나주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되어서야 손전등에 손도끼 들고 가까스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는데요. 너무 늦으셨네요.’ 아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아아, 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요? 대한민국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이다지도 욕되고 참담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가르칠까요? 어른들 말 잘 들으란 얘기는 이제 못하겠습니다. “어른들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듣지 마라. 그것만이 너희들이 살길이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어느 순간에도 너 자신의 판단이 우선이다. 본능과 상식이 우선이다. 다른 얘긴 그저 참고만 하여라.”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까요? 이제부터 저는 아이들에게 ‘말 안 듣는 법’을 가르칠 작정입니다. 탈출명령 없어도 탈출하는 법을 가르치렵니다. 그것이 멍청하고 파렴치한 어른들 말 듣다가 떼죽음당하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나으니까요.

어느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인 것은 우리의 절반도 행복을 못 가진 천사들이 우리를 샘낸 것이었네. 아무렴! 그것이 이유였네. 나는 밤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그녀 곁에 누워 있네. 그래 거기 바닷가 무덤 속 물결치는 바닷가 그녀 곁에 나는 밤새도록 누워 있네.’ 아이 잃은 엄마가 절규합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야?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였어?” 바닷가에 내내 쟁쟁 울립니다.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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