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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4 19:06 수정 : 2014.04.24 19:06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슬픔의 파도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집단 슬픔이다. 과거에도 재난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어린 꽃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것은 어쩌면 자괴감이리라. 그리고 한 번 더 눈물이 흐른다. 위기가 오니, 드러난 실체들 때문이다. 자본은 얼마나 부패했는가? 정부는 얼마나 무능한가? 그리고 언제나 등장하는 무례한 괴물들. 곪은 상처에서 삐져나오는 진물 같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쩌다 이 나라가 국제사회의 걱정거리로 전락했을까? 매뉴얼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얼마나 많은가? 다만 지키지 않을 뿐이다. 재난에 관한 법이, 혹은 제도가, 아니면 담당 기관이 없어서일까? 부차적이다. 핵심이 아니다. 그리고 이맘때면 등장하는 예산 타령, 부끄럽지도 않은가?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이다. 권한은 청와대에 있는데, 책임은 실무자들에게 묻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반복된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목격한 일주일의 무능, 그 야속한 시간들의 원인이다.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실무 관료들의 책임만 엄격하게 물었다. 절대 높은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결과는 무엇인가? 현장에서 공무원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위만 쳐다본다. 부처 간 협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조대책을 미뤄놓고, 우선 책임지지 않으려 경쟁하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청와대만 쳐다보는데, 알고 보면 청와대는 성실하지도, 유능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왜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가?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다. 사과하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이 나라에 과연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있는가? 위기가 왔을 때, 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구조에 나서고, 기적 같은 감동을 만들어,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겪은 일주일은 어쩌면 이토록 참혹한가? 선장이 도망친 배처럼, 우리의 지도자는 어디로 갔는가?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고개를 들고 좌우를 봐라.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있는가? 각 부처는 사소한 대변인 논평조차 스스로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청와대의 지시를 기다린다. 대통령이 무슨 담론을 제시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말의 일관성이 없기에, 어떤 말에 장단을 쳐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우왕좌왕은 세월호 대책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감추려 하는가? 진단이 올바르지 않으면, 결코 처방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왜 또 다른 비극을 예비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책임감이다. 왜 권한은 움켜쥐고, 책임만 아래에 떠넘기는가? 높은 사람이 책임지지 않으면서, 실무자들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묻는 조직이나 정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이념을 들고나오는 야만을 보면, 절망을 느낀다. 시민들은 당신들처럼 그렇게 타락하지는 않았다.

한 가닥 희망으로 바다만 바라보는 저 애절한 뒷모습을, 단장의 고통으로 눈물도 말라버린 저 깊은 그늘을, 그리고 부패한 자본과 무능한 정부를 향한 서늘한 분노를 잊지 말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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