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5.06 19:15 수정 : 2014.05.06 22:03

정정훈 변호사

건상유족(蹇裳濡足)이라는 말이 있다. 치마를 걷어 발을 적신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초선의원 안철수는 단번에 제1야당의 공동대표가 되었다. 현실정치에 충분히 ‘발을 적시지’ 못한 상태에서 정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정당에서 훈련과 경험을 쌓아 정치적 능력과 지지를 키워가는 과정이 생략되었다. 정치신인 안철수가 정당 대표로서 정치적 결단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균형감과 책임감에 대한 고려가 요구되는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가 제1야당의 대표로서 보여준 2번의 리더십은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와 기초연금법안 처리 협조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기초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적 결단’에서는 정치신인으로서 새정치를 외치던 안철수의 열정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선거공학을 판단의 우선순위로 삼는 노회한 정당 대표로서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기초연금법은 ‘수정안’이란 형태로 통과됐지만, 소득에 따라 연금을 차등 지급하고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정부안과 본질적으로 같다.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파기했고, 제1야당은 대통령이 ‘약속’을 저버리는 것에 협조한 꼴이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건복지위 법안 심의를 거부하여 법안 상정 자체를 막는 시도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복지위 법안 심사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워주었다. 그 결과 수정안은 단 하루 만에 복지위, 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하여 법률이 되었다.

이 과정에 안철수의 ‘정치적 결단’이 있었다.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여러분들이 지방선거의 어려움을 호소하니 지도부로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책임지겠다. 정치적 결단으로 받아 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정당의 대표는 책임을 지는 자리다. 대표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요구되는 책임윤리도 있다.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에 대하여 지는 것이다. 공적연금 체계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훼손하고, 공적연금의 본질 중 하나가 ‘세대간 연대’에 있음에도 ‘세대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런 사안에 대하여 ‘정치적 결단’을 하면서 누구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안철수 의원이 정당 대표로서의 책임만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책임윤리를 고민했는지도 의문이다.

2013년 정치신인 안철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엔엘엘 발언과 관련하여 정상회담록 원본을 공개하자는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도 원하지 않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통과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이런 일들이 안 생기게 막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제1야당의 공동대표가 된 안철수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거부하는 기초연금’의 원칙과 신념을 공유하는 동료 의원들이 충분히 있었다. 김용익 의원은 ‘백기 투항’에 반발하여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당 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의식하며 ‘나쁜 결단’을 한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에게 투영되었던 것은 국민들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 열망들을 현실정치의 과정에서 어렵게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의 잔 근육을 키워가야 했다. 그러나 정치신인이 현실정치에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당 대표로서의 자리에 ‘순응’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인 안철수는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