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5.07 19:04 수정 : 2014.05.07 19:04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파일에 법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모른다. 경제 살리기를 앞세우며 반드시 필요한 규제마저 암 덩어리로 치부하는 것이나 이미 10년 전 수명이 다한 고리원전 사용을 승인하는 것이 바로 물욕이라는 것을. 노동자와 국민이 아니라 기업과 권력이 우선인 정치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바로 자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국가나 국가권력과 손잡은 자본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의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 4·3 항쟁,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신정권, 광주민중항쟁,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용산 남일당 참사로 인한 죽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로 인한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4대강, 아라뱃길, 명품도시 건설 따위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은 대통령과 시장들도 처벌받지 않는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운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도 처벌받을 리 없다.

희생자들은 언제나 힘없는 국민이었고 그들이 받은 상처는 제대로 치유된 적이 없다. 결국 우리는 각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불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에 눈감고, 권리가 침해당해도 견뎌내며 은근슬쩍 타인의 손을 놓고, 목소리를 낮추며 살아왔다. 정치는 있는 놈들의 것이라고 체념하고 냉소하면서 살아왔다.

지난 주말 청계광장에서 있었던 추모집회에 갔다. 공동체 아이들과 함께 간 터라 일부러 청소년 집회 시간에 맞췄다. 청소년들은 분노하고 있었지만 흥분하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추모집회에 오는데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지, 왜 어른들은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침묵하라고 강요하는지, 왜 언론은 거짓을 일삼는지. 자신들에게 미래는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들이 울먹이며 다짐했다. “침묵하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

그 다음날 정미홍씨가 자신의 에스엔에스에다 청소년들이 일당 6만원을 받고 시위에 나섰다는 유언비어를 올렸다. 저들의 궤변과 억지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조바심과 안간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들의 선동이 먹히질 않는다. 그동안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조차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종북좌파의 선동으로 호도하면 움츠러들던 사람들이 달라졌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딛고서야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나의 생존은 우리가 모두 생존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노를, 두려움을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해내야 한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내팽개쳤던 가치와 방식을 되찾아야 한다. 가진 것 없는 우리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힘없는 이들끼리 손을 잡고 함께 위기에 대처할 힘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아이들에게 더는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게 가해자들과 그 뒷배를 찾아내어 죄를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안전해지는 길은 그렇게 함께 맞서는 것뿐이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누군가는 카네이션을 달아줄 아들딸들을, 누군가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부모를 잃었다. 멀쩡히 살아남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2014년 4월16일 아침을 잊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끼리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