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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1 19:07 수정 : 2014.05.12 15:37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작년 말, ‘안녕들 하십니까’ 질문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냥 자신만을 탓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연민하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돌아보니 나만 힘든 게 아니네. 우리 힘을 합쳐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고립된 개인이 죽을힘을 다해 성공을 좇는 건 결국 희망 고문일 뿐 달라지는 게 없다는 진한 각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참사는 이 안녕 프레임을 분노 프레임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나서서 우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넘어 이젠 행동에 나서게 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바꾸겠습니다’는 이런 운동을 상징하는 구체적 외침이다. 안녕 프레임에선 나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분노 프레임에선 누구 탓에 안녕하지 못한지가 분명하게 인식됐다. 기업의 탐욕, 행정의 무능, 언론의 선정이 빚어낸 4·16 참사로 인해 무엇을 바꾸고, 누가 나서야 하는지 확실해졌다. 그 중심에 ‘화난 어머니’들이 있다.

4·16을 전후로 여론조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40대 여성의 이탈이다. 40대 여성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40대 여성은 40대 남성에 비해 7.3%포인트 높았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도 40대 여성에서 박 후보가 얻은 득표는 남성에 비해 8~10%포인트 더 높았다는 게 새누리당의 결과 분석이다. 그런데 4·16 참사 후 확 달라졌다. 한국갤럽의 4월 둘째 주 조사에서 61%를 기록했던 박 대통령 지지율은 5월 첫째 주 조사에서 38%로 뚝 떨어졌다. 무려 23%포인트의 급락이다. 지난 5월5일의 중앙일보 조사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이겨야 하는지 물어보니, 여당 승리 28%, 야당 승리 51.3%였다. 엄마가 뿔났다는 표현 그대로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가 주로 40대다. 이들 어머니들이 겪을 고통, 즉 자식 잃은 아픔을 누구보다도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바로 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의 어머니들이다. 자식을 둔 부모야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그 고통을 곧바로 자신의 문제로 느낄 수 있는 즉자성에선 40대 어머니가 좀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40대 어머니의 분노는 주로 정부의 무능력에서 비롯됐다. 지금 시대는 흔히 마더십(mothership)이라고 해서 어머니 리더십의 시대라고 하는데, 정부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초기 대응, 사고 후 인명구조에서 보여준 소극적 대응 그리고 남 탓을 하며 질책만 하는 박 대통령의 언사와 자세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더십의 흔적은 없었다. 이들이 바로 화난 엄마, 즉 앵그리맘(angry mom)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콜로라도 덴버의 시의회 선거에 나선 한 여성 후보가 사커맘을 자처했다. 사커맘(soccer mom)은 방과후에 자녀들을 차에 태우고, 축구를 시킬 만큼 자식 교육과 미래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 엄마들을 지칭한다. 1996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이들 사커맘에 반응하는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재선에 성공했다. 이 사커맘처럼 6·4 지방선거에는 앵그리맘이 중요하다. 더 크게는 향후 정치와 선거는 4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앵그리맘의 마음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선택, 투표 여부와 지지 향배는 전적으로 정당·후보의 역량에 달려 있다. 화만 부추기거나, 다 똑같다는 논리로 임하는 정당이나 후보는 선거재난에 직면할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철희 "진보는 품을 넓히고, 보수는 꿈 좀 가지세요" [한겨레談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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