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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4 19:03 수정 : 2014.05.14 19:03

이범 교육평론가

나는 강남에 산다. 꼭 강남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어디 혁신학교 옆으로 이사 가 볼까 하고 물색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근거리에 사시는 처갓집 어르신들 덕에 4남매를 키워왔기 때문에 번번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가을에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가 상장을 받아 왔다. ‘바른말 쓰는 어린이 상’이었다. 그런데 투표를 통해 뽑혔단다. 어른 앞에서 쓰는 언어와 자기들끼리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투표로 뽑게 한 것이리라. 3학년이던 둘째 아이 반에서는 3차 투표까지 간 접전 끝에 둘째가 뽑혔다. 그런데 5학년이던 첫째 아이 반은 사실상 투표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욕을 안 하는 아이가 단 한 명이었기 때문에.

기쁘기도 한데, 슬프기도 하다. 우리집 아이들이 상을 받아 왔으니 기쁘긴 한데, 나머지는 만 11살만 되면 대부분 욕을 하며 산다니.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교육과 소득 수준이 가장 높다는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죄다 욕을 하는 나라가 있을까?

우리집 아이들이 왜 욕을 안 하지? ‘욕하면 죽인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교육평론가랍시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모습만 보여준 것도 아니다. 부부싸움도 종종 했으니까. 유일하게 짐작되는 이유가, 아이들이 ‘학원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집 아이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저런 학원을 이용해왔는데, 다만 다니기 싫은 학원은 안 다닐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뭔가를 ‘시킨다’고 표현하지 않고 아이를 ‘꼬신다’고 표현한다. 왜? 아이에게 거부권이 있으니, 뭔가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야말로 꼬셔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연애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강압과 카리스마를 앞세우기보다 상대를 잘 꼬셔야 한다는 점에서.

나라고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우리 교육시스템의 허점과 부실함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일반인보다 훨씬 더 두렵다. 해외로 이주하려고 몇 년간 꽤 구체적인 준비를 한 적도 있었다. 특히 학교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돌보는’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확인할 때 가장 실망스럽다. 첫째가 2학년 때 선배들에게 돈을 뜯겼는데, 신고를 접한 당시 교감의 반응은 ‘뭐 그런 일로 소란이냐’는 투였다. 우리집 아이들은 수학 이외에는 문제집을 풀지 않아서인지 가끔 우려스러운 시험점수가 집으로 날아오는데, 한 번도 교사가 연락해온 적이 없다. 아침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도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으로 등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한숨과 함께 밀려온다.

학교뿐이랴. 행정적으로는 늘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만, 본연의 제 기능은 못 하는 세상. 따지고 보면 부모 중에 기필코 일류 학벌을 따내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대부분 그저 상식이 지켜지는 시스템 속에서, 연애하듯 아이를 키우고 싶을 것이다.

올해 초 <에스비에스>(SBS)에서 <부모 vs 학부모>라는 3부작을 방영했다. 대치동 한복판에 6개월간 ‘기적의 카페’라는 걸 만들고 지속적인 부모-자녀 간 소통을 통해 망가진 가족을 회복시키는 얘기였다. 못 보신 분은 인터넷으로 꼭 보시라.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가 ‘아름다운 배움’의 박재원 소장인데, 이분이 요새 인터넷에서 ‘기적의 카페’를 운영하며 강조하는 지론이 있다.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 성공한다.”

세월호 참사 속에서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아이란 옆에 있기만 해도 고마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미래를 빌미로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 그러려면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를 꼬셔야 한다. 그리고 학교를 바꿔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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