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0 18:22
수정 : 2014.05.20 18:22
|
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
그의 편지를 받은 것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5주기 때 정 전 회장의 기업가정신과 관련된 칼럼을 쓴 뒤였다. 내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던 때의 이야기다. 의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겸손하고 정중한 감사글이었다. 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 가족애는 좋은 것이다.
그에 대해 조금 다른 인상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일 서울시장 후보 토론을 지켜보면서였다. 그는 친형이 대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 기업이 서울 뚝섬 부지에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는 사업을 서울시가 빨리 인가해주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족애는 좋은 것이지만, 영향력 있는 공직자는 언젠가는 가족의 이해관계와 공공의 이해관계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하는 괴로운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그 장면에서 깨달았다.
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인상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몇분 뒤 같은 토론회에서 그가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관련 정책을 터무니없이 틀린 근거를 대며 비판할 때였다.
그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에 2500억원을, 협동조합에 1000억원을 썼다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기간도 명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시는 2013년 집행된 예산과 2014년에 책정된 예산을 합해도 마을공동체에 130억원을 썼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영역 관련 예산은 최근 3년치를 모두 합해도 1194억원이다. 둘 다 합해도 서울시 전체 예산액의 0.22%다. 숫자가 틀려도 많이 틀렸다.
이어서 그는 이 사업이 정파성을 띤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회적기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던 국회가 통과시켰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에는 이 모두를 포괄하는 사회적경제위원회가 설치되어 관련 정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정파적이라면, 도대체 어느 쪽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아마 그는 이런 앞뒤 사정을 전혀 모르고 주어진 자료를 그대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사업에 부정적이던 그는 흥미롭게도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는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기업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엉뚱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서울 인구가 줄고 있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내 단골집인 서울 동작구의 동네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경기도 안산에서 살거나,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경기도 용인이나 성남에서 사는 이유는 기업 규제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좋은 삶을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원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모였다. 그러나 그들을 도시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높은 삶의 질이다.”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시민은 떠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민이 떠난다면 아마 집값과 사교육비가 고통스러워서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갈수록 생활비는 치솟는데 일터도 삶터도 팍팍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자는 느는데 정을 나눌 이웃은 줄어들면서 이곳을 지켜야 할 이유도 준다.
그래서 서울에는 더 많은 따뜻함이 필요하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아직은 약하지만 도시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는 가족애가 깊은 사람일지는 모르겠다. 핵무장이나 스포츠외교 같은 분야를 잘 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정작 서울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