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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7 18:25 수정 : 2014.05.27 18:25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매년 8월에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정부의 비상대비 훈련은 을지연습이며, 이 기간 중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전시 자원동원 훈련은 충무훈련이다. 40년 넘게 연례적으로 진행되어온 훈련이지만 시민들은 을지연습은 “을지로에서 하는 연습”이고 충무훈련은 “충무로에서 하는 훈련” 정도로 알고 있다. 매년 똑같은 반복훈련이 진행되는 이때도 고위공직자는 골프를 치고 기업의 비상기획관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정부의 훈련 관찰관이 방문하지 않도록 로비나 한다. 비상계획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미꾸라지처럼 귀찮은 일을 피해갈 궁리나 한다. 정부 비상대비계획인 충무계획은 더 한심하다. 이미 무너져 없어진 교량이 전시에 중점 관리대상 시설로 지정되어 있는가 하면, 단종으로 없어진 의약품이 버젓이 동원물자로 지정되어 있다. 지자체에서는 이걸 표지만 바꿔 재난안전계획, 민방위 계획, 테러대비 대책으로 또 써먹는다. 똑같은 계획, 똑같은 훈련, 똑같은 검열이 반복된다. 국민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이런 제도가 거대한 낭비이자 실효성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예비군과 민방위를 합치면 국가는 500만명이 넘는 안보조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숱한 안보위기와 재난사태에서 국가가 이 거대조직을 제대로 써먹는 걸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이들 조직에는 천안함과 같은 안보사건은 물론이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사태도 남의 일이다. 우리는 현역 65만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군대마저도 전쟁이 나면 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불구자들이다. 연간 30조원이 넘게 국방비를 집행하지만 그 대부분이 일선 전투원의 생명가치를 고양하는 게 아니라 최고위층의 위신을 세우는 호화무기 도입에 투입된다. 첨단무기 도입에 치중한 나머지 그 무기에 장착될 탄약조차 사지 않는 군대다. 우리 군대의 야전상황은 무장이 빈약한 만성 빈혈 환자와 같다. 해양 참사에 구조함 하나도 투입하지 못한다.

국가의 안전을 저 혼자 지키는 것처럼 입에 안보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이들은 정작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이미 현대사회의 안전하고는 거리가 먼 부실 안보자산들이다. 이 모든 걸 합리화하는 유일한 명분은 북한의 위협이지만, 여기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북한이 우리 함정에 조준사격을 했는데도 그 포격원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걸 보라. 미국이 없으면 전략적 임무는커녕 전술적 임무도 못할 것 같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자신들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북한 위협에 대한 위기관리만 하겠다고 한다. 위협은 날로 현대화·복합화되고 있는데 자신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전통적 안보만 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니 이런 청와대도 재난에서 쓸모가 없다. 해체를 하려면 해경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를 답습하는 권위주의 안보체제 그 자체여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대책이란 게 무엇인가. 국민 개개인의 안전 그 자체를 중시하는 인간안보, 포괄안보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전통안보에 머무는 것들이다. 위기와 재난의 현장에 있는 수요자 중심의 안전대책이 아니라 힘센 중앙기관 위주의 공급자 중심의 대책이다. 시민에게 지혜를 구하는 민주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자세가 아니라 중앙으로 권력을 일원화하는 권위적인 통제 대책 일색이다. 위기는 현대적으로 진화하는데 발상은 과거에 머무는 이런 대책에는 어떤 성찰과 전략, 비전이나 혁신이 없다. 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되어버린 낡은 시스템을 구조조정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러면서 국가 개조라고 하니 헛김이 절로 나온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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