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8 18:37
수정 : 2014.05.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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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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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거다. 4년 또는 5년 주기로 각종 선거가 치러진다. 큰 선거가 이렇고, 거의 매년 치러지는 재보궐선거가 또 있다. 그때마다 선거는 이러저러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규정되곤 한다. 가장 흔하게 듣는 의미규정이 있다. 여권은 대개 일꾼론을 내세우고, 야권은 심판론을 앞세운다. 쉽게 말하면, 한쪽은 따따부따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은 어영부영 일을 제대로 못하니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외친다.
어릴 적 역사를 배울 때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임진왜란이 나기 전에 일본의 전의(戰意)를 알아보기 위해 조선 조정은 통신사를 파견한다.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일본을 다녀와서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는다. 황윤길은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높게 봤고, 김성일은 이를 부인했다. 같이 가서 봤는데 어떻게 이처럼 서로 다를까 싶어 요즘말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훗날 본인이 유성룡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김성일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부인한 이유는 그의 당파가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속은 동인이었고, 황윤길은 서인이었다. 당시엔 동인이 집권당이었는데, 전쟁 가능성을 인정하면 그건 집권당으로서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한 사람의 품성이나 유·무능이 아니라 여야의 정치 프레임으로 보면 황윤길과 김성일의 판단 차이를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서인이 집권하고 있었다면 황윤길과 김성일의 판단도 뒤바뀌었으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정치에선 ‘황윤길’과 ‘김성일’이 다투고 있다. 요즘의 ‘김성일’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가 정부의 부실대응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적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의 흐름을 보면 이런 주장은 소수다. 그래서 들고나온 것이 이른바 눈물론이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의 말이다. 지역으로는 영남, 정치성향으로는 보수를 주축으로 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의 감성에 호소하는 슬로건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네 편 내 편 누구 편인지를 묻는 담론전략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왜 눈물을 흘렸나? 세월호 참사로 인한 억울한 희생, 그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 때문 아니던가. 대통령의 눈물은 그분들의 희생과 고통을 막지 못한 자책의 표현이다. 그 눈물로 잘못이 씻기지도 않고, 부실이 그냥 개선되지도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의지다. 공직자로 하여금 그 의지를 갖게 하고, 그 의지를 유지하게 하는 동력이 바로 선거다. 결국 유권자의 몫이란 얘기다.
당시 국왕 선조가 당파를 초월해 사리를 엄정하게 따지고, 그 결과 김성일의 주장을 물리치고 전쟁에 차분하게 대비했더라면 민초들의 삶이 왜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혀 초토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의 국왕은 유권자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라는 말, 루소가 했다. 바꿔 말하면, 투표를 통해 따질 건 따져야 주인이다. 선거는 사람·세력에 대한 찬반 또는 선택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때론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평가 시스템이기도 하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집권세력에게 한해 전에 있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부실대응한 책임을 엄정하게 물었다. 미국은 더 안전한 나라가 됐고, 2012년 허리케인 샌디도 잘 견뎌냈다. 이처럼 편가르기를 넘어 따질 건 따져야 나라가 더 좋아진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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