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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2 18:16 수정 : 2014.06.02 18:16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선거가 끝나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선거 이전까지 비상했던 상황들은 선거를 통해서 갈무리될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사태를 정리하려 할 것이다. 세월호를 우리 삶의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 사회에 편만한 크고 작은 세월호를 호명하고, 그 ‘덧셈의 정치’로써 세월호를 추념하는 것이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리라고 믿는 이들의 기운도 조금씩 스러져갈 것이다.

우리가 6·4 지방선거에 세월호의 심판을 덧입히는 것은 이번 선거의 정치적 입지점과 무관한 우리의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들은 세월호에 대하여 무슨 이야기를 하였던가? 세월호를 심판해 달라며 표를 얻어간 저들이 당선 이후에 세월호가 남긴 총체적인 의제들에 대하여 ‘그건 중앙정부의 책임’이라고 하면 어떡하겠는가? 이를테면 나는 핵없는사회공동행동이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 보낸 탈핵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 중에서도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원전 제로’와 ‘고리 1호기 폐쇄’ 등을 포함한 탈핵 관련 7가지 설문 중 6개항에 무응답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 중에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도입했던 사람이다. 서울을 위해 원전이 존재하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원전 안전이 세월호 사태 이후에 불거진 안전 담론의 최선두에 있다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무응답은 결국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는 ‘세월호 심판 논리’에 기대고 있지만, 세월호가 남긴 중대한 정치적 사명을 극적으로 피해가고자 한다. 그는 결국 ‘정몽즙’으로 대표되는 경멸의 에너지에 힘입어 당선되고자 하는 것인가?

선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사실상 1번과 2번뿐이었음을 괴롭게 확인시켜 줄 것이다. 선거는 1번, 2번 사이에 나 있을 미세한 차이로써 갑론을박과 일희일비를 반복하다 서서히 지쳐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정치적 운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것이다. 저들을 심판할 제도적 공간이 선거밖에 없는데, 선거라도 잘해서 뭔가 바꾸자는 절박한 대의가 배반과 무력감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또 한번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의제들은 선거를 통한 심판으로 수렴되고, 공론의 마당은 희망의 수사로 넘실댄다. 이 무슨 희망고문이란 말인가?

밀양송전탑 국회진상조사단 구성을 위해 밀양 주민들이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가 있었다. 18대 국회에서 구성했다가 얼마 뒤 치러진 총선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19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 다시 제기되었으므로 우리는 구성을 낙관했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의 적극적인 반대와 야당의 방조로 인한 실패였다. 국회로 올라갔던 밀양 주민 대표단은 크게 낙심했다. 국회 상임위 회의장을 나와 고개를 떨군 채 국회의사당 건물을 돌아나오던 무렵 부북면의 ‘야전사령관’ 한옥순 할매가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점마들 안 믿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다!”

선거가 끝나면 저들은 밀양 송전탑 4개 움막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시도할 것이다. 당신들 스스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실은 믿어야만 했던 노인들은 다시 공권력과 맨몸으로 부딪치게 된다. 10년의 싸움 끝에 벼랑으로 내몰린 밀양의 노인들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지금 온 나라에 가득 찬 크고 작은 세월호의 조각들은? 정치의 실종, 정치의 배반으로 국가권력과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수많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운명은? 아니, 선거가 지금 우리를 ‘가만히 있으라’고 주저앉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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