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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4 18:45 수정 : 2014.06.04 18:45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인천의 한 초등학교 학급에는 카스트가 있다. 물론 선생님이 직접 카스트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반에는 한 모둠에 네명씩 여섯개의 모둠이 있다. 그리고 그 한 모둠 안에는 으뜸이, 이끔이, 도우미, 깔끔이라고 하는 역할이 있다. ‘으뜸이’는 모둠의 우두머리고, ‘이끔이’는 그 모둠의 학습을 책임진다. ‘도우미’는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떠들지 않게 모둠을 통제하는 역할이고, ‘깔끔이’는 주변 정돈과 청소를 맡는다. 모둠마다 역할을 정하는 방법은 자유다. 어떤 모둠은 제비뽑기로 정하고, 어떤 모둠은 힘센 아이가 나서서 역할을 나눈다. 얼핏 보면 민주적인 이 제도의 허점은 네개의 역할에 주어진 힘이 동등하지 않다는 데 있다.

으뜸이와 이끔이는 이른바 모둠의 주류다. 두 아이는 반장, 부반장에게 건의할 수 있고, 반장, 부반장에게 전달된 건의사항은 선생님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도우미나 깔끔이는 으뜸이와 이끔이를 거치지 않고서는 반장, 부반장은 물론 선생님께 직접 건의나 상담을 할 수 없다. 어느 날 그 학급의 한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반에는 계급이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역할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고 모둠을 계속 바꾸니까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으뜸이나 이끔이가 되고 싶어 해요. 으뜸이나 이끔이는 당연히 힘세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맡아요. 나머지는 도우미와 깔끔이만 해요. 그래서 저는 기다리고 있어요.”

“무엇을?” “모둠이 아무리 바뀌어도 3, 4계급인 우리들이 으뜸이나 이끔이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를요. 애들이 그걸 깨닫게 되면 그때 그 친구들이랑 같이 모둠을 없애달라고 선생님한테 건의할 거예요.”

열세살 아이의 깜냥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특하고 멀쩡했다. 아이가 전하는 학교의 모습이 이 사회와 너무 똑같아 소름이 끼치고 슬펐다.

그 학교는 변두리에 있다. 학부모 대부분이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들이다. 먹고사는 게 바쁜 부모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심하다. 그 초등학교와 가까운 공립중학교에서 얼마 전 학교폭력으로 아이가 심하게 다쳤다. 화가 난 부모가 학교에 항의를 했더니 교장은 부모가 태권도를 가르치지 않아 아이가 약하게 자란 탓이라고 했다. 한번은 학교급식에서 벌레와 이물질이 나와 부모들이 항의하자 교장은 학교에 가난한 아이들이 많아 무료급식 비율이 높아서 급식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했다. 이런 방식의 학교 운영이 연수구나 송도에서도 가능했을까?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다. 서민들과 노동자는 자녀의 교육을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내 자녀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후보 따위는 보지 말고 모조리 1번을 찍어 박근혜 대통령을 밀어줘야 한다는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피맺힌 눈물보다 대통령의 한 줄기 눈물을 더 안타까워한다. 국민이 자신에게 맡긴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과 측근들의 안위,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데 쓰는 대통령을 힘없고 약한 자신들과 동일시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과 안전, 자녀의 미래를 지키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이 사회다. 그리고 그 사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나는 석달째 도우미로만 지낸 그 아이가 기다리는 ‘모둠의 반란’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 성공의 경험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모둠의 역할은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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