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9 18:28
수정 : 2014.06.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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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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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벼를 심기 위해서는 땅을 세 번 갈아야 한다. 마른 땅을 한 번, 물을 대고 한 번, 무논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 또 한 번. 무릎이 시원치 않아 수년 전에 중고로 구입한 트랙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지난해부터 다시 경운기로 땅을 갈게 되었다. 요즘에 농사꾼들은 너도나도 트랙터를 쓰기 때문에 경운기로 논을 가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보기 힘든 모습이다. 인근에서 경운기로 농사짓는 사람은 나와 앞 동네 노인뿐이다. 트랙터를 두 대나 보유한 후배는 나더러 요새 경운기로 농사짓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핀잔이다.
요즘 트랙터는 갈수록 대형화 추세다. 농업 인구가 감소하면서 한 농부가 경작해야 할 면적이 늘어난 탓도 있고, 축산 특히 소를 사육하는 규모가 커진 것도 원인이다. 전에는 50마력 미만이던 것이 지금은 100마력을 넘는 것도 많다. 가격도 억대를 훌쩍 넘으니 고급 외제 승용차 못지않아 이런 기계를 가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은근한 자랑거리다.
트랙터나 벼 수확에 쓰는 콤바인 같은 대형 농기계는 그것과 관련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억압적이고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트랙터가 논을 갈 때는 부메랑처럼 기역자로 구부러진 30여개의 칼날을 붙인 축이 고속으로 돌아가면서 흙을 잘게 부수는데, 이때 땅속에 숨어 있는 뱀이나 개구리, 지렁이, 도마뱀, 땅강아지 같은 작은 동물들은 그 무지막지한 칼날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지만 농부는 앞쪽에 붙은 높다란 운전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없어 마음에 거리낄 일이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육중한 바퀴 밑에 깔린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기계에 짓눌리는 것은 작은 동물들만이 아니다. 기계의 무게에 눌린 땅은 압착되고 단단해져서 물과 공기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앰으로써 땅의 물리적 조건을 악화시킨다. 이런 곳에서는 작물의 뿌리가 튼튼하게 자라기 힘들다. 땅 위에서 기계는 잔인한 폭군이다.
대형 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면서 나이가 많고 기계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농부들은 남의 기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농사에서는 심고 거두는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고 또 좋은 날씨에 일을 처리하려면 자기 일로도 바쁜 기계 주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언행을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일을 해준 대가로 기계 주인이 요구하는 바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농촌 사회에서 기계는 이제 강력한 권력이 되었다.
기계는 농부의 가족 안에서도 권위적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농기계는 남자가 운용하기 때문에 농사일에서 여자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처지가 된다.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은 대체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경우 여자가 잘 보조하지 못하면 남편에게서 야단을 맞아야 한다. 일을 하다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남편의 엉뚱한 화풀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는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즘에는 농가에서 소를 소규모로 키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소의 먹이가 되는 볏짚이나 풀을 수백 킬로그램이나 되는 뭉치로 묶기 때문에 이를 다룰 기계가 없는 농가는 소 사육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 사육이 소수의 농가에 집중되어 대규모화되는 이런 추세 역시 농촌에서의 계층 분화를 심화시키며 농촌 경제의 기초 체력을 약하게 한다.
이런 기계들을 움직여주는 석유가 모자라고 가격이 폭등하면 우리의 농업과 식량 문제는 어떻게 될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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