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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5 18:19 수정 : 2014.06.15 18:19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중국의 닉슨’이라는 말이 있다. 공산 중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의 대통령은 반공주의자 닉슨이었다. 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한다. 아시아의 질서가 급변하면서 실용주의 외교가 다시 부상한다. 특히 일본의 아베와 인도의 모디 총리의 행보가 놀랍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악수를 마다하지 않는 실용의 태도가 부러운 것은, 우리가 낡은 이념의 동굴에서 살기 때문이리라.

인도의 모디 총리는 ‘권력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말’과 ‘권력을 잡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 달라야 한다는 상식을 보여주었다. 국제사회는 모디의 집권을 우려했다. 모디는 2002년 그가 주지사로 있던 구자라트 지역의 이슬람 학살을 방조한 혐의가 있다. 그래서 ‘인도의 밀로셰비치’라고도 불렸고, 실제로 미국은 반인권 범죄 혐의로 모디의 미국 입국 비자를 거부하기도 했다.

모디는 파격적 행보로 우려를 날려버렸다. 그는 자신의 취임식에 파키스탄 총리를 초청했다. 인도 내부적으로 종교 갈등이 꿈틀거리고, 선거 국면에서 모디 지지자들이 보인 공격적 민족주의를 고려할 때, 모디의 제안은 적극적 화해의 손짓이었다. 다행히 파키스탄의 샤리프 총리가 이 제안에 응했고,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그동안 동력을 잃었던 양국의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되었다. 물론 앞날은 순탄하지 않다. 평화의 길은 멀 것이다. 다만 양국은 경제회복이 절실한 만큼, 그래서 평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북한과 일본의 스톡홀름 합의도 놀랍다. 북한은 한·미 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할 때 적극적으로 일본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일본의 ‘북한 카드’는 어떤 의미일까? 아베는 지금까지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이익이 있으면 한·미 양국의 대북 제재 공조에서도 이탈할 생각이다.

이미 아베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본의 원산항 진출도 제기된다. 러시아와 중국이 나진항으로 남하하자, 일본이 원산항으로 북진하는 그림은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경쟁의 단면을 드러낸다. 아베의 실용주의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축으로 재무장을 추진하지만,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농업부문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동맹은 이념이 아니라 이익일 뿐이다.

아베와 모디는 개인적 친분이 있고, 일본과 인도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아베는 2007년 자서전에서 “다음 10년 내에 일본-인도 관계가 일본-미국, 일본-중국 관계를 앞지를 것”이라고 썼다. 모디도 201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양국관계가 “아시아의 미래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베는 중국 견제를 위해 양국관계의 도약을 원하지만, 모디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인도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역동적 삼각관계가 아시아의 바둑판을 흔들 것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에서 복잡한 합종연횡이 전개되고 있다. 힌두민족주의자 모디도,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아베도 국익을 위해 실용을 선택했다. 우리는 올해 안에 ‘평양의 아베’를 볼 것이다. 또는 ‘이슬라마바드의 모디’도 구경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보수는 시대를 읽는 눈이 없는가? 왜 케케묵은 시대착오의 장벽에 웅크리고 앉아 국가의 이익을 방치하는가? 이 시대는 국내정치용 이념가가 아니라 세계 변화를 읽는 전략가가 필요하다. ‘중국의 닉슨’을 부정하는 것은 낡은 이념이지 외교는 아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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