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17 18:28
수정 : 2014.06.1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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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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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해 내수경제를 살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모양이다. 구체적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언급했다. 수출만 잘되고 서민들에게는 그 몫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 후보자는 정치인답게 현실적이다. 한국 경제는 지표는 비교적 괜찮지만 현실을 뜯어보면 모두가 힘들다. 특히 중산층 이하 계층의 고통과 불안은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라는 참혹한 상황은 여기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의 상당부분은 내수경기가 어려운 데 있다. 최 후보자는 그 점을 꼭 집어 지적한 셈이다.
그러나 주택시장에 대출을 풀겠다는 해법은 완전히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위험한 결론이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혹시 성공하더라도 더 큰 재앙을 부를 가능성이 높은 대책이다.
부동산시장이 살아나려면 실수요자가 늘어야 한다. 현재 집이 없는 세입자와 청년 신혼부부 등이 구매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돈을 빌릴 수 없어서가 아니다. 빌린 돈을 갚을 만큼 충분히 벌 수 없어서다.
최근 5년간 실질임금은 정체상태다. 언제 직장을 떠나야 할지 모르고 언제 사업을 접을지 모르니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지금 그 비싼 전세금을 감당하면서 눌러앉아 살고 있는 것이고, 집을 늘리기보다는 빚을 갚는 데 소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더 빌려준다고 선뜻 구매에 나서기는 어렵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결국 사람들의 투기심에 불을 질러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견줘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전세금이 오르는 데 자극받아 ‘이러느니 사버리자’는 마음이 들 것이다. 나중에는 집값이 조금 들썩이는 듯한 모습에 ‘더 오르기 전에 사자’고 뛰어들게 되리라. 급기야 집값이 천장을 뚫을 듯한 기세로 치솟는 상황이 되면 ‘집 없으면 바보’라는 말에 현혹되면서 너도나도 대출을 늘려 집을 사들이는 상황이 온다. 결국 주택가격이 치솟으면서 가계대출은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당장은 경기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뒤 경제전문가들은 정확히 이런 상황이 경제위기의 징후라고 지적한다. 주민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다. 그는 최근 콘퍼런스에서 부동산과 대출 활황이 동시에 일어난 23개 나라 중 21개가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국제통화기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최근 일어난 50여건의 금융위기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부동산시장 급등 뒤 급락이 이어지면서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오른 가격이 다시 떨어지면서 대출받은 이들을 파산시키게 되고, 이게 금융위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말 부동산시장을 통해 내수를 활성화하고 싶다면, 대출이 아니라 소득을 늘려 차곡차곡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맞다. 주민 부총재의 연구에서도 부동산은 비슷하게 활황이었지만 대출은 늘지 않았던 7개 국가 중 대부분인 5개 국가가 위기를 맞지 않았다. 근로소득자의 실질임금 정체상태가 왜 이어지는지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내보는 게 좋은 출발점일 것 같다.
우리는 1990년대 말 맞았던 혹독한 경제위기를 여전히 ‘아이엠에프 위기’라 부른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의 정책 처방이 평균적 한국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극심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몇년 안에 부동산시장 급등락에 이은 위기가 찾아오고, 그 위기를 ‘최경환 위기’라고 부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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