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6 18:26
수정 : 2014.06.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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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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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인문사회계 캠퍼스 ○○관에서 3교시 수업이 있는 학생입니다. 2교시 수업 마치고 ○○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3~14분입니다. 수업이 45분에 끝나야, 59분에 ○○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강의가 조금씩 늦게 끝나면서, 3교시 수업에 그만큼 늦게 돼 지각이 많이 쌓인 상태입니다. 교수님께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무례고 실례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제발 45분에 맞춰서 수업을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첨부 파일은 자연계 캠퍼스에서 ○○관까지 가는 길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이번 학기에 제 강의를 들은 어떤 학생이 중간고사까지 다 치르고 나서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보통 강의할 땐 시작하는 시각뿐만 아니라 끝나는 시각도 정확히 맞추려 하는데, 이번 학기엔 제가 1~2분 정도 강의를 늦게 끝낸 경우가 잦았던 모양입니다. 바로 댓글을 붙였습니다. “이런 부탁은 전혀 무례하지 않습니다. 다른 수업을 제대로 듣는 것도 학생들의 권리기 때문입니다. 진작 말해주었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혹 지금까지의 지각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내가 그 과목 담당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필요하다고 여기면 알려주세요.”
학생들이 당연한 요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게 안쓰럽습니다. 청년들이 정당한 요구를 자유롭게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권위나 나이 등의 차이에 움츠리지 말고 거리낌없이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답변이 나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설령 답변에 동의하지 못하는 까닭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데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과정을 따라가지 못한 채 결과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유로운 시민이 되는 데도,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되는 데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장애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장애물을 이렇게 높이 쌓아 올린 이들은 물론 기성세대입니다. 강의를 제때 끝내 달라는 부탁마저 그토록 어렵게 하게 만든 책임은 저 같은 학교 선생들한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답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만들기입니다. 그리고 문제 만들기의 핵심은 질문하기에 있습니다. 인터넷의 시대에 이르러 답 찾는 일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습니다. 정보는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은 권력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정보를 모으고 추리고 엮어서 지식을 만드는 일입니다. 마치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듯 말입니다. 질문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한국의 교육 현장에선 여전히 답 찾는 연습만 기를 쓰고 하게 합니다.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역설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의 방식으로 경쟁하다 보면 경쟁력마저 잃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강의가 늦게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지도까지 붙여가며 꼼꼼히 설명해준 학생은 그게 무례한 일이 될까 봐 걱정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청년과 다른 수강생들한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이렇게 전했습니다.
“말하려는 내용의 문제와 말하는 방식의 문제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 다 하세요. 질문하기는 학생의 특권입니다. 물론 예의도 중요합니다. 맞는 얘기라도 예의 없이 하면 상대방이 잘 안 듣게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예의를 꼭 나이와 연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외려 논점이 흐려집니다. 예의는 나이를 떠나 서로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반말이나 막 하는 거야말로 무례한 일이지요. 여러분은 충분히 예의가 바릅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기를 거듭 바랍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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