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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7 18:27 수정 : 2014.07.07 18:27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올봄에 생산되는 농산물인 감자, 마늘, 배추, 양파 등이 모두 가격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아우성이다. 나도 감자와 배추, 양파를 심었다. 기껏해야 300평 정도씩 농약 비료 하지 않고 소규모로 재배한 것이다. 감자야 매년 해오던 것이지만 봄배추와 양파는 올해 처음으로 시도해본 것이다. 그동안 하지 않던 나까지 대들었으니 가격이 좋을 리 없을 거라는 자괴감도 든다.

감자는 그동안 늘 하던 대로 두둑을 비닐로 씌우지 않고 심었는데 생육기에 비가 제대로 오지 않은데다 줄기가 일찍 시들어서 수확기에는 감자밭이 풀밭이 되어버렸다. 수확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 그곳이 감자밭인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였다. 무성한 잡초를 헤쳐 가며 감자를 캐 보니 역시 알이 굵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농가에서 나온 감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굵다.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감자는 지역 농협에서 수매하는데 식품 관련 대기업과 학교급식용으로 공급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수매에서는 감자 한 개에 160그램 이상 되는 것만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 주먹 크기 이상이다. 간식용으로 삶아 먹기에 알맞고 맛도 좋은 아담한 것들은 관행으로 재배한 것과 같은 가격이다. 이 가격이면 선별비와 종이상자 값으로 2500원이 나가고 거기에 비싸게 구입한 씨감자 값을 더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왜 그렇게 커다란 감자만을 선호할까. 감자는 대부분 껍질을 벗겨서 쓰는데 큰 감자는 그 일에 시간이 덜 들고 상품의 모양도 좋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감자를 만들려면 화학비료를 꽤 많이 써야 하고 두둑을 비닐로 덮어씌워야 한다. 적당량을 넘어선 화학비료는 인체에 해롭고, 비닐은 생산과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해로운 물질을 낳는다. ‘친환경’으로 재배된 큰 감자에 대한 이러한 선호는 오히려 반환경적인 재배를 유도하게 된다.

양파는 지난해 가을에 모종을 50여만원이나 주고 구해서 심었다. 두둑에 비닐을 씌웠지만 봄에 꼬박 한달 동안 아내와 함께 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풀을 뽑아야 했다. 양파와 궁합이 맞는 계분을 밑거름으로 쓴데다 지난겨울이 따뜻한 덕분에 처음으로 시도한 양파 농사는 대풍이었다. 어른 주먹보다 훨씬 굵은 양파를 다 캐서 널어놓고 보니 온 밭에 빼곡한 양파가 뿌듯했지만 판매할 일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했다.

양파를 자루에 주워담고 있는데 동네에서 시내에 나가 장사를 하는 분이 다가와 한 자루에 5000원씩 주겠다고 한다. 양파 가격이 똥금이라고 익히 듣고 있던 터라 아쉬운 마음으로 스무자루를 주었다.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도 돌렸는데 흔해 빠진 물건인지라 별로 생색이 나지 않는 듯하다.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단체의 가격을 참조해서 그보다 조금 낮게 가격을 책정하고 나의 직거래 회원들에게 홍보했지만 별 반응이 없어 부랴부랴 가격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그 가격도 시장가격에 비하면 꽤 높은 편이다. 비로소 양파와 양파즙 주문이 들어와서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소모하고 있다.

어느 댁에서 주문한 양파를 들고 가니 우리가 처음에 제시한 가격으로 값을 치르려고 한다. 그분은 가격을 내린 줄 모르고 있었다. 사정을 설명해도 그분은 우리가 처음 제시한 가격을 보고 주문한 것이니 받으라는 것이다.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여서 그대로 챙겨 나왔다. 뿌듯함은 그의 몫이고 미안함은 내 몫이다. 그러나 낸들 어찌 미안하기만 했겠는가. 배달을 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감자를 배달하러 갈 때 얼마간 더 얹어 드려야겠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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