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1 18:34
수정 : 2014.07.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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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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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강고했던 대통령의 지지층은 분해되어 ‘조기 레임덕’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보면 능력도 비전도 없이 독선만을 고집하고 있다. 변화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시간을 뭉개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겉보기에 여당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건재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야당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다. ‘묻지마 지지층’을 제외한 부동층은 이탈하고 있거나 그것을 결심하고 있다. 지방선거 기간 대구와 부산에서 나타난 ‘비새누리당 정서’의 확대는 그것의 명백한 징후다.
제1야당의 실패는 명백해 보인다. 이런 비유는 고약하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상황이 현재 야당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 정서다. 질 수 없는 대선에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현재의 제1야당은 지지층에겐 역사적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 한 일이란 무엇인가. 당내 권력투쟁에 골몰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4·16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 대참사 앞에서 어떻게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지며, 이를 통해 유사한 비극을 봉쇄할 것인가가 현재의 정치권에 던져진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 모두 이 과제에 대한 답변 제출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데 결과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것의 유력한 원인이 ‘지방선거’나 ‘재보선’ 같은 선거일정 때문이라는 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임박한 선거와 그것에서의 승패가 권력의 정당성을 가르는 중핵적 지표로 간주되니, 정작 규명되어야 할 4·16 대참사의 진상은 결코 규명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선거제도가 국민적 분노의 폭발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마취제’ 역할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무력감과 분노는 분열적으로 증폭하고 있다.
4·16 대참사의 투명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구축은 정부와 여야 사이의 권력투쟁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정치세력들은 간과하고 있겠지만, 이것은 시민의 정치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의 존재 근거를 뿌리로부터 묻고 있는 엄중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잊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질문이다.
왜 그러한가? 500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비극적 죽음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동참자이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로부터 100일이 가까워오는 현재까지, 500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극적으로 죽어간 희생자 300여명의 절규와 비탄과 공포를 보고, 듣고, 고통 속에서 감정이입해왔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바로 나의 것일 수도, 내 자식의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정치세력들은 정략적 유불리를 따지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일 것이다. 그것이 ‘정치라는 극장’에서 각자가 짊어진 배역이라는 사실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의 극장이 그렇듯, 그 극장에는 연기력이 뛰어난 전속배우도 서툰 신인배우도 캐스팅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현실로 돌아와 당신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까지의 상황이라면, 관객들은 이럴 바에야 극장을 폐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4·16 대참사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계몽된 것은 극장 바깥의 무장된 관객들이다. 정치세력들이 때마다 교묘하게 선보인 신작 드라마가 재탕 삼탕의 슬랩스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4·16 대참사의 진상을 투명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남은 것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탄핵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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