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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4 18:24 수정 : 2014.07.25 11:32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어떤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려 합니다. 이때 지도교수가 자기 이름을 저자목록에서 빼자고 하는군요. 연구 과정에서 자신이 기여한 게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 탓입니다. 그런데 교수는 이런 상황이 좀 불편합니다. 학생이 연구를 주도적으로 잘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교수가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 지도와 저자 자격의 문제, 간단하지 않습니다.

교육부가 연구윤리 관련 기준을 구체화하겠다고 합니다.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고 나서 그리 판단한 모양입니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시점도 부적절하고, 방향도 옳지 않습니다.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건 연구윤리 지침이나 규정이 모호했던 탓이 아닙니다. 교육자로서 그는 흠이 너무도 컸습니다.

연구 환경의 변화에 맞춰 연구윤리 관련 지침을 개정하는 건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하려는 일은 그런 수준을 넘어섭니다. 교육부는 현재의 지침이 너무 추상적이라 표절이나 중복게재 같은 ‘나쁜 짓을 적발’하는 데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연구부정 행위가 있었는지를 기계적으로 가려내고 싶어합니다. 지침의 구체화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섯 단어 이상이 연쇄적으로 나올 때 표절로 판정하기로 한다면, 다섯 단어가 겹칠 땐 뭐라 해야 할까요? 두 문장 이상을 인용 없이 사용하는 걸 표절이라 하기로 한다면, 한 문장씩 건너가며 사용하는 건 괜찮다는 뜻인가요? 이런 식의 구체화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교육부는 결국 헛심만 쓰게 될 것이고, 문제는 외려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것입니다.

글머리에 들었던 예를 떠올리며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쟁점을 하나만 살펴볼까 합니다. 학위논문 관련 내용이 학술지에 발표될 때 지도교수도 공동저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학위논문은 대학원생이 대학에 제출합니다. 그리고 학술지논문은 연구에 참여해 저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연구자 공동체에 보내는 글입니다. 써서 보내는 이와 받아서 읽는 이가 다른 만큼, 같은 연구 내용이 토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학위논문과 학술지논문의 저자는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학위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이 공동연구였다면, 지도교수도 학술지논문의 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의 저자자격은 학위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이 공동연구였는지 그 여부로 따지면 될 일입니다. 연구윤리 지침을 구체화해서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분야마다 원칙이 다르다 할 순 없습니다. 원칙이 적용되는 맥락이나 문화가 다를 뿐이겠지요. 학술지논문엔 그 연구에 기여해 저자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이름이 다 들어가는 게 원칙입니다. 학위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이 주로 공동연구인 분야에선 지도교수가 학술지논문의 공동저자인 게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반면에 지도교수가 적극적으로 연구에 개입하지 않는 편이 대학원생의 성장에 더 보탬이 되는 분야에선 일반적으로 지도교수가 학술지논문의 공동저자로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원칙은 명확하지만, 현실은 복잡다단합니다. 이런 걸 다 지침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려 하면 할수록 상황은 외려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연구윤리는 악당을 응징하기 위한 칼날이 아니라, 좋은 연구문화를 가꾸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어야 합니다.

만약 정부에서 청문회 이후 딱 하나만 바꾸기로 한다면, 그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교육부 장관 후보자 사태의 핵심은 청와대입니다. 연구윤리는 다른 문제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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