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7 18:29
수정 : 2014.07.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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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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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100여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짙은 안개 속에서 출항한 세월호는 지금도 안갯속에 있고, 그 주위에서 억측만 무성하다. 이제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믿을 만한 다른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닌 우리 앞에서 정부는 여전히 뻔뻔하기만 하다. 진실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데 있다는 감각이 나날이 퍼지면서 우리의 힘을 빼앗아간다. 이렇게 힘을 잃은 끝에 남는 것은 음모론이나 냉소주의뿐이다.
4·16 참사 유족들을 중심으로 작성된 4·16 특별법안의 정식 명칭은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내놓은 특별법안이 ‘진상규명’을 내건 것과 달리 이 법안은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차이는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주 결정적이다. ‘진상’이라는 말이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에 관한 말인 데 반해 ‘진실’은 꼭 어떤 대상에 한정되기보다는 그 대상을 둘러싼 관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진실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진실이란 항상 이미 어떤 관계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4·16 특별법안은 ‘4·16 참사’라는 사건의 진상을 밝힐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관계들, 우리 모두가 포함되는 관계들에 개입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특별법안의 핵심이 수사권에 있다는 그동안의 논의 방식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 특별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이 수사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없었다는 사례가 많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강력한 수사’, ‘철저한 조사’와 같이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권력행사가 부각되면 그 수사권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문제는 흐려진다. 사실 4·16 특별법안이 여당이나 야당이 작성한 특별법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그 수사권을 행사하는 주체의 구성에 있는데도 말이다.
4·16 특별법안은 16명으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의 절반인 8명(위원장 포함)을 피해자 단체에서 추천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전체 20명 가운데 4명만 할당한 새누리당안은 말할 것도 없고 15명 가운데 3명을 피해자 단체가 추천하게 한 새정치민주연합안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을 남들에게 맡기지 않으려는 유족들의 강한 의지다. 그런 의미에서 수사권 요구는 경찰이나 검찰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진실규명 과정의 민주화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구로 창설되는 특별위원회를 ‘민간기구’라고 부르면서 수사권 부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법무부 장관의 견해는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4·16 특별법안은 진실이란 밝히는 것이라기보다 만드는 것임을 시사한다. 밝힌다는 시각적인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빛을 비추어 눈에 보이게 한다는 것인데, 거기서는 밝혀야 할 진실은 이미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으며 그 빛에 의해 얼마나 드러나느냐가 관건이 된다. 하지만 진실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진실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가 된다. 지금 국회 분위기로 봐서는 특검에 의한 ‘진상규명’이라는 선에서 특별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4·16을 낳은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부 전문가에 의해 밝혀지는 진상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만드는 열린 과정 자체이며 그것을 통한 사회성의 회복이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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