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8 18:30
수정 : 2014.07.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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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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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하다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보았다. 잠시간이었지만, 몹시 행복했다. 그러나 그 뒤끝에 세월호와 단원고 아이들의 존재가 뇌리를 잡아챈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끝내 마음이 아파왔다.
결국 나는 전교조와 14인의 진보교육감을 생각하게 된다.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들 다짐했지만, 100일 사이에 그 다짐들은 깃이 젖은 햇닭처럼 초라해지고 말았다. <조선일보>는 6·4 지방선거 다음날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 압승’이라고 달았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가 선거에 반영된 결과를 가장 악의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수의 현격한 우위가 관철되는 한국 선거의 지형에서 진보교육감 14인의 당선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입시와 경쟁으로 내몰려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삶이 이렇게 허망하게 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끔찍한 자각이었으며, 그러므로 한국 교육의 변화에 대한 절실한 바람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한국 교육에 대한 종언의 선포였다.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지 않았다면 단원고 아이들은 당장 살아났을 것이며, ‘가만히 내버려만’ 둔다면 의정부고 졸업사진에서 보듯 ‘지금 당장’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외노조화는 전교조에 주어진 천금 같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한 14인의 진보교육감 체제는 역설적으로 교육운동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육은 100가지 문제에 대한 1~2가지의 제도적 답안이 아니라 100가지 문제에 대한 100가지의 개별 현장의 답을 찾아야 한다. 교육은 백년의 대계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나날의 삶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일반적인 사회문제와 다른 것은 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현장성과 무정부성, 결과에 대한 과정의 우위성은 끊임없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교조는 제도적 해결을 이루어내는 정치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성장을 추구했고, 너무나 급격하게 계층화되어버렸다. 결국 전교조는 현장의 영향력은 사실상 미미해졌음에도 우파들의 이데올로기 투쟁에는 단골로 호출되는 ‘종이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6만의 조합원에 포함된 9명의 해고자를 빌미로 제도 바깥으로 밀어내버린 폭거를 심판하고 제자리로 돌려놓을 책임은 전교조가 아니라 입법·사법·행정 권력에 있다. 중요한 것은 전교조가 아닌 ‘전교조 운동’이며, 진보교육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선이 아니라 전면적인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14인 진보교육감 체제의 과제는 ‘김상곤 효과’로 표현되는 성공 가능한 이슈의 선점을 통한 재선이 아니라, 설령 재선에 실패할지라도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이 만나야 할 지점으로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혁신’과 ‘청소년 인권’을 제안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몸과 시간에 대한 이 오래된 구금과 유린을 교정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거위의 꿈’을 부르는 가수를, 이종격투기 선수를 꿈꾸었으나 죽음 직전까지도 ‘가만히 있어야’ 했던 단원고 아이들의 소망을 단원고 이후의 아이들로부터 실현시켜주기 위한 투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학교 안에서든 학교 바깥에서든 스스로의 ‘몸’을 써서 움직이고 ‘몸으로’ 배울 시·공간을 마련해주는 과업이 될 것이다.
전교조와 14인의 진보교육감들이 세월호 3주년, 4주년 때에도 ‘미안하다’고 고개 조아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너무 지겹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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