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30 18:24
수정 : 2014.07.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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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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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 타고 가라 했어요? 죽으라고 했어요?”
“그 아이들(세월호 단원고 학생들)은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 시간에 문자나 하고 있었다.”
‘엄마’들이 한 세월호에 대한 막말이다. 세월호 관련 막말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동안 정부와 청와대, 일부 정치인과 목사들이 내뱉은 막말만 해도 시집 한 권 분량은 될 정도다. 그러나 단원고 학생들이 배의 마지막 장면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담으며 느꼈을 공포와 슬픔은 부모가 아니라 해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엄마연합, 엄마부대가 ‘엄마’라는 말 뒤에 어떤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공감 능력이 없는 저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사람이나 세상을 보라고 하셨다. ‘역지사지’의 마음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였다. ‘역지사지’는 타인을 공감하는 일이다. ‘엄마’는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첫 타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감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아이의 마음에 좌절감이 쌓이고 자존감을 잃는다. 그리고 분노가 점점 쌓여 무기력하게 되거나 폭력적인 성향으로 내면화된다. 나는 그동안 곳곳에서 공감받지 못해 상처받아 좌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세월호를 겪으며 우리 사회가 ‘공감’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도 아직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세월호 유가족의 아픈 마음에 공감해 일인시위를 열고, 서명을 받고, 순례와 단식에 참여하는 엄마들과 시민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엄마라서, 내 아이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싶은 이기심과 싸우며 주말만큼은 광화문이나 시청 앞에서 함께하려 애쓴다.
지난 일주일간을 백령도에서 보냈다. 백령도와의 인연은 작년 여름 인천 아트플랫폼의 ‘이얍 신나는 어린이 예술 캠프’ 때부터다. 백령도 아이들은 맑고 순수했다. 그러나 고립된 섬에 사는 어른들의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인한 알코올과 폭력 문제가 아이들을 어둡게 했다. 평소에 어른들로부터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에게 금세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닷새간의 인형극 워크숍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의 손을 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약속대로 백령도로 가 아이들과 재회를 하고 청소년들과도 인형극 워크숍을 했다. 다시 닷새가 지나 헤어질 때가 되자 아이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또 한번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지난 7월20일, 나흘째 해무로 결항되었던 백령도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선착장에서 세 시간이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 8일 동안 우리를 기다려준 아이들과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북포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과의 인형극 워크숍까지 있어 힘이 들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아이들이 말했다.
“겨울에 또 올 거죠?”
내년에 대학생이 될 백령종고 고3 둘은 겨울방학 때는 선생님으로 함께하겠다고 했다. 우리도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더는 인천 아트플랫폼 프로그램은 없겠지만 아이들과 한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 나는 정치나 권력, 헤게모니 싸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공감과 약속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물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향한 아픈 공감이었기를, 국민들과 약속한 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꼭 지켜지기 바란다. 공감받지 못한 국민들의 분노가 더 커지기 전에 말이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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