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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4 18:38 수정 : 2014.08.04 19:59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내가 사는 이곳 순천·곡성 지역에서도 이번에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는 이른바 ‘왕의 남자’ 간의 대결로 전국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래서 투표율도 가장 높았다고 한다. 선거 결과는 여권 실세임을 근거로 ‘예산폭탄론’을 내세운 여당 후보가 과반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실시 이후 현재의 집권당과 맥이 닿는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26년 만의 이변이라는 말도 있고, 호남에서 지역 구도가 균열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또 지역에서 여당 노릇을 했던 제1야당의 오만과 독선, 무능력에 대한 심판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여러 평가들에 앞서 나는 이번 선거 결과가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하다. 우선은 당선된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쏜 ‘예산폭탄’이라는 말 때문이다. 무릇 예산이란 국민 또는 주민의 삶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세금을 쓰는 것이고, 폭탄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무기다. 예산으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건지 폭탄으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것인지 애매하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표현 속에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어떻게 한데 어울려 쓰일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삭막하고 선정적이다. 하기는 그가 선거에 출마하기 전 권력 핵심부에서 홍보와 관련된 요직을 맡았다고 하니 언어 구사에서 이렇듯 비범함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지도층 인사의 공적인 언설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의 언어는 교묘하게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상대방을 최대한 비아냥거리는 데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마치 누가 더 천박해질 수 있는지를 두고 서고 경쟁하는 것 같다. 그 말들은 평화보다는 갈등을 부추기고 날카롭게 각이 져 있어서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정치 지도자들이 솔직하고 부드러운 표현 속에서 품격을 잃지 않고 상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는 큰 선을 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불편했던 그다음 이유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사고 발생 및 구조 작업과 관련해 정부에 쏟아지고 있는 각종 의혹들은 명쾌하게 해명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부풀고 있다. 정부에서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당은 국정조사에서 진상 파악을 방해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조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 문제는 집권 여당이 압승하면서 세월호처럼 침몰하려 한다. 국회의원은 지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국민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기도 한다. 여기에 전대미문의 참사와 관련해 일말의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대표로 뽑아주었으니, 우리 지역 유권자들에게도 세월호 참사는 하나의 교통사고에 불과한 것인가.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국민들 마음속에서 이렇게 안전하게 수습되어 가고 있는가.

선거 결과가 씁쓸했던 또 다른 이유는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정부가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부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변하지만 합리적인 반론들이 많다. 쌀은 우리 민족의 주식일 뿐 아니라 정신과 물질생활의 요체였다. 쌀농사가 무너지면 농업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지역 농민 유권자는 도시지역 못지않게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그런데 그의 선거 공약에는 어디에도 농업을 살리겠다는 말이 없다. 농사가 무너진 곳에 농민들이 기대하는 지역발전이 이뤄지면 그것은 어떤 기괴한 모습일까.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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