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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5 18:31 수정 : 2014.08.05 22:58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육군 22사단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고, 28사단에서는 구타살해 사건이 있었다. 군은 사건 발생 원인과 사후대처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병 간의 집단따돌림과 가혹행위에 심각하고 병리적인 가학성이 있었지만 장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는 무능했다. 특히 28사단 사건에서는 진상 축소와 은폐 기도가 뚜렷했다.

이런 사건이 적폐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관심사병에 대한 파악과 배려를 ‘형식적으로’ 촉구하는 상급기관과 건성건성 보고서를 올리는 일선 장교들의 관행 속에서 고립성이 높은 지오피(GOP·일반전초)나 의무대 내무반 등에서 폭력이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 동안 군 당국은 <진짜 사나이> 같은 예능프로로 군 생활을 분칠하는 데 몰두했을 뿐이다.

하지만 적폐에 적폐를 더해온 박근혜 정부도 몇가지 점에서 책임이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인사를 통해 정부관료들에게 업무 능력이 아니라 충성을 요구했다. 윤창중씨의 청와대 대변인 임명을 생각해보라. 그의 능력과 성향에 대해서는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그것은 관료들과 정치권에 능력보다 충성에 보상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역으로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나 윤석열 수사팀장의 경질은 충성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력한 징벌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더 고약한 예는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경질한 일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국정 쇄신 요구를 충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써먹은 것이었다.

이런 행태는 관료제 전체를 대통령을 향한 충성을 중심으로 조직한다. 관료제는 본래 위계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이런 충성 요구는 자기 강화를 거듭하며 급속도로 관철된다. 위계성의 면에서 어떤 조직보다 강한 군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고 문화적 신호를 수용할지는 명백하다.

사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의 저자 오찬호가 지적하듯이, 격심한 경쟁에 시달려온 20대 문화에는 차별을 당연시하고 차별을 공정함의 한 형태로까지 수용하는 면이 있다. 그런 20대 문화가 박근혜 정부 같은 위계성을 지향하는 정부의 군대문화와 접속할 때 가학적인 폭력의 증폭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둘째, 이런 위계적인 충성의 강화는 사건 처리에서도 축소·은폐 성향을 높인다. 음주사고보다 ‘뺑소니’가 훨씬 무거운 범죄지만 무사히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 때문에 뺑소니는 이따금 일어난다. 그런데 들키지 않게 사태를 꾸밀 권력마저 쥐고 있다면 뺑소니는 빈발할 것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항소심 무죄 선고 같은 것이 군 당국에 어떤 신호가 될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정부 아래서 군 당국이 사건을 명백하게 밝히려는 강한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진상 대신 내부 제보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 더 관심이 크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사건이 축소나 은폐되지 않으면, 강력한 개혁을 천명하며 역시 충성의 계열화를 통해 조직된 언론기관을 이용해 의제를 호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이 유병언이나 세월호 선원들을 악으로 규정했듯이, 군 당국은 윤 일병 가해자들에게 30년을 구형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며, 국가개조를 운운하듯이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급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 수사기관이 사건의 발생 원인과 축소·은폐의 진상을 제대로 밝힐 것이라 믿기는 어렵다. 죽은 이에게 마지막 정의나마 돌려주려면, 유가족이 신뢰할 수 있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하고, 거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그래야 하듯이.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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