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0 19:20
수정 : 2014.08.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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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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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조치는 북한에 대한 제재다.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든 남북 경제협력이 중단된 지 벌써 5년째다. 정부에 묻는다. 5·24 조치를 그대로 두고, 다시 말해 교류와 협력을 중단한 채,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가? 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구상을 공허한 말장난으로 여기는 줄 아는가? 왜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할까? 5·24 조치 때문이다. 해제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우선적으로 5·24 조치는 지나치다. 지구상의 어떤 제재가 인적 교류 자체를 금지한 사례가 있는가? 단지 북한의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포괄적인 경제제재를 하지만, 관광이나 인도적 목적의 방문을 불허한 적이 없다. 다시 냉전시대의 풍경이 재연되고 있다. 언론에 나오는 거의 모든 북한 방문기를 보라. 재미동포들의 몫이다. 미국은 인적 교류를 압력으로 여기지만, 한국은 반대로 생각한다.
접촉이 없으니, 정보도 없다. 이제 곧 북한과 일본 사이에 인적 교류가 재개된다. 과거 일본이 북한 정보에서 우리보다 앞선 시기가 있었다. 남북한의 접촉이 없었을 때 말이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더이상 북한 정보를 일본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일본에 가서 북한 정보를 귀동냥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제재의 실효성이다. 시장에 가봐라. 북한산 조개라는 팻말이 보인다. 북한산 송이라고, 북한산 고사리라고 원산지 표시가 되어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북한산 농수산물은 5·24 조치로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상인에게 물었다. 북한산은 법적으로 못 들어오지 않나요? 그이가 대답했다. 형식은 중국산인데, 알고 보면 북한산이에요.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북한산이 중국을 거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중국으로 돌아오느라 선도가 떨어지고, 중국산으로 위장하느라 관세가 포함되어 가격이 20% 이상 비쌀 뿐이다. 중국 상인들만 배 불릴 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5·24 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처벌이다. 북한이 사과하지 않으면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처벌의 실효성을 재검토할 때가 왔을 뿐이다. 북한에 아무런 고통도 주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 중소기업만 망하게 했다.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된 이후 동북아 지역의 경제질서 변화를 보라. 북-중 경제협력은 진화했고, 북-중-러 삼국 협력도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북-일 경제교류가 재개된다면? 급변하는 질서에서 5·24 조치는 족쇄일 뿐이다.
현안에 눈을 감은 채 통일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9일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장벽의 균열은 오랫동안 조금씩 진행되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때,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벽을 무너뜨리는 노력을 곧바로 시작했다. 그래서 1963년 크리스마스 때 2주간 친척 방문이 이루어졌다. 벽은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오고 가야 벽에 구멍이 생긴다. 그 틈 사이로 오해가 이해로, 원한이 화해로, 대결이 협력으로 바뀔 수 있다. 5·24 조치는 또다른 ‘베를린 장벽’이다. 장벽을 높이 쌓으면서 통일을 말할 수 있는가? 8·15 경축사에서 또다른 대북 제안을 준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묻고 싶다. 5·24 조치는요?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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