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1 18:42
수정 : 2014.08.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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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좋은나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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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힘이 대단하다. 그가 주도한 적극적 경기부양책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정치시장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최경환노믹스’는 7·30 재보선에서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을 누르고 여당이 압승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전원이 야당 성향 인사들로 도배된 <경향신문>의 ‘드림 내각’에서 여당 인사로는 독야청청 기재부 장관 1순위로 꼽혔으니 그의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야당으로서는 진실과 정의, 생명과 인권이라는 근원적인 가치보다 경제를 더 중히 여기는 여론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말했듯이 농부가 밭을 탓하면 안 된다. 장사가 잘 안되고 취업이 잘 안돼서 아우성치는 서민들의 원성에 적극 응답한 정부여당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공천 잡음은 차치하고라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야합으로 드러난 것처럼, 애초에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에 진정성의 무게가 실린 것도 아니었으니.
최경환노믹스는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경기부양정책이다.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금리인하를 주문하고, 재정을 동원한 마중물 정책을 추진하고, 세제지원과 규제완화로 기업투자 활성화를 도모했다.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부동산 규제완화도 했지만,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해온 ‘소득주도 성장론’도 수용했다.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 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라는 참신한 정책수단을 들고나왔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촉진까지 언급했다. 재정과 통화신용정책에 의한 수요 진작, 세제와 규제완화를 통한 공급 자극, 그리고 소득주도 성장 정책까지 망라했다.
최경환 부총리가 스스로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한 새로운 정책조합은 성공할 것인가? 몇가지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소리는 요란했지만 막상 차려진 밥상은 별로 신통치 않다. 금리인하는 한국은행의 협조를 기다려야 하고, 재정은 여력이 별로 없다. 추경 편성도 없이 기금 여유분을 활용하고 공기업 투자를 활용한다는 정도로 수요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규제완화도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들의 반대로 벌써 ‘태산명동서일필’이 되고 말았다. 둘째, 일관된 경제철학의 부재 탓에 여러 정책들이 상충하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규제완화와 세제혜택으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공급중시정책은 자칫 소득불평등을 부추겨 소득주도 성장을 좌초시킬 수 있다. 부유층에 유리한 배당소득에 대한 혜택이나, 지불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한 근로소득증대세제도 마찬가지다. 셋째, 부동산을 비롯하여 금융완화 및 금융지원 정책은 결국 부채를 증가시키는 일이다. 소득증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융부실과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부양정책, 특히 단기적으로 적시에 실행하는 수요증대정책은 필요성과 효과성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하지만 수요증대정책이 불건전한 부채의 축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해 안정적인 수요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논리다. 가처분소득의 분배는 조세와 복지를 통해 재분배를 확대하면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지만, 정치적 제약이 존재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시장소득의 분배를 개선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중단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발을 묶고 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민주화 없는 경기부양에만 매달리는 것은 길게 보면 사상누각이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좋은나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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