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0 18:46
수정 : 2014.08.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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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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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 고생이 많았고 정말 잘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전혀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다.” 언론 보도를 보면, 7·30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한 말이라고 한다. 이 진솔한 토로는 박 대통령이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과 얼마나 선거 승리를 간절하게 원했는지 알게 해준다. 그런데 승리를 기뻐하는 것과 승리에 고맙다고 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다. 고맙다는 표현은 대통령의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전제하고 있다. 때문에 이 발언은 새누리당 또는 김무성 대표가 앞으로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할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듯하다.
다음 선거는 2016년 4월에 있을 20대 총선이다. 앞으로 20개월 남았다. 선거만큼 민심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도 없다. 그런 점에서 선거 없는 20개월이 대통령으로선 참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박 대통령이 크게 신경 쓰는 게 두 가지 있다. 여론 지지율과 선거다. 2명의 총리 후보와 2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여론 지지율은 4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가진 두터운 고정 지지층의 힘이다. 앞으로도 이 고정 지지층이 쉽게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선거도 없으니 박 대통령으로선 거칠 게 없는 형국이다.
안 그래도 권위적 리더십을 가진 박 대통령이니 이런 태평한 시기에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자명하다. 취임 초의 모습 그대로 ‘나홀로 통치’를 고수할 것이다. 당은 청와대의 압박과 견제 때문에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가 있다. 김무성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주는 방안을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앞으로도 ‘선청후당’의 청와대 우위 구도가 당연해 보인다. 당은 자율의 활력을 잃고, 김 대표가 공언한 수평적 당청관계 약속도 허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대표로서 리더십을 발휘해 정치를 복원하고, 대선까지 내달리는 구상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럴 경우 대표직은 프리미엄이 아니라 디스카운트로 작용할 것이다.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가 김무성 대표에게는 독이다. 만약 7·30의 승리가 김무성 대표의 인기나 리더십 덕분에 얻은 것이라면 그 승리는 김 대표에게 상승 동력이 됐으리라. 후보와 구도가 거의 정해진 상태에서 대표로 선출되었으니 선거 승리에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도 좀 머쓱하다. 반대로 선거에서 졌더라면 김 대표의 입지는 더 넓어졌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동력으로 삼아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펼칠 수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김무성 체제를 확고하게 안착시킬 수도 있었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의 공화당이 대승한 후 하원의장 깅그리치의 독주 때문에 대선후보 밥 돌의 운신 폭이 극도로 좁아져서 결국 1996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이 좋은 예다.
김무성 대표에게는 경륜이 있다. 묵직한 정치력도 그의 장점이다. 넓은 품까지 갖추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대통령제는 대중적 열망에 호응하는 드라마나 감탄 요인(wow factor,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매력 요인)을 지닌 인물을 선호한다. 그뿐인가. 보수 집권 10년 끝에 치르는 선거이니 새로움을 보여주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에서 아직 김 대표는 대중적으로 약한 주자다. 뭔가 모멘텀을 만들어 진화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여야 대치 국면이 그런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더 과감하고, 더 거칠어져야 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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