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4 18:19
수정 : 2014.08.24 18:19
|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40년 전 8월30일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에서 폭탄이 터졌다. 사망자 8명을 포함해 40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이 사건은, 9월23일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 명의의 성명이 발표되면서 ‘일제 침략 기업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늑대’에 이어 ‘대지의 엄니’, ‘전갈’ 등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다른 부대들도 등장하면서 미쓰이물산, 다이세이건설 등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속에서 성장하고 당시에 또다시 아시아로 ‘진출’하던 기업들에 대한 폭파공격은 계속되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활동은 이듬해 5월에 그들이 일제 검거됨으로써 막을 내렸지만, 조사 과정에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용된 폭탄이 원래 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천황 히로히토를 암살하기 위해 제작한 철교 폭파용 폭탄이었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미쓰비시중공업 폭파의 효과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침략과 식민지배의 최고책임자인 히로히토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태평스럽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일제의 연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그들도 유일하게 히로히토만은 ‘처형’ 대상으로 보았다. 히로히토를 죽이고 침략 기업을 폭파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을 멈추게 하려고 한 그들의 활동에는 일제의 역사를 끝내려는 강한 의지가 깔려 있었다.
물론 그들이 선택한 ‘폭파’라는 방법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미쓰비시중공업 폭파를 제외하면 그들의 활동에 따른 사망자는 없지만, 다른 기업 폭파로도 중상자를 포함한 27명의 부상자를 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본인 혁명가로서 무엇보다 먼저 관철시켜야 할 것은 일제의 역사, 일제의 구조 총체를 ‘청산하는 것’”이라며 말로만 일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침략을 막기 위한 실천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죽음을 각오해 청산가리를 지니고 다닌 그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침략의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에 대한 철저한 거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다른 신좌파 조직들과 달리 ‘전위당’을 건설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비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과거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만을 직시하며 그것을 단절시키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여겼다. 그들이 천황제 문제와 식민지배 책임 문제 등을 선구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현재가 어떤 과거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으며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많은 시민운동에 의해 계승되었지만 일본의 역사는 끝내 단절되지 않았다. 지금 일본에서 일제의 망령이 넘쳐나는 것은 그 결과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와의 대결이다. 과거가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를 비우지 않는 한 미래가 들어설 자리도 없다. 우리가 어떤 ‘적폐’ 위에 있기에 4·16의 비극이 가능해졌는지 밝혀내고 그것이 더이상 연장되지 않게 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앞날 역시 일본과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광화문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 단식이라는 행위를 통해, 과거를 연장시키는 일상의 시간이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무장투쟁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현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더이상 이런 시간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거부’의 실천이야말로 미래를 가능케 하는 첫걸음이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