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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3 20:14 수정 : 2014.09.03 21:04

이범 교육평론가

수능 국사에 이어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될 전망이다.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하락할 거라는 둥, 풍선효과로 인해 별 효력이 없을 거라는 둥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별 근거가 없는 얘기다. 상대/절대평가 여부와 난이도 설정은 별개 문제다. 합리적인 난이도 설정이 이뤄진다면 절대평가가 도입되어도 학생들의 학습목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풍선효과는 불가피하지만, 2010학년도 외고 선발제도 개혁에서 드러났듯이 부분적인 풍선효과와 사교육 경감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이참에 수학을 필두로 여타 과목도 절대평가화해야 마땅하다. 변별력 문제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변별력을 보충하고 싶다면 절대평가 등급제하에서 일부 문항에 가중치를 부여하든가, 등급제 아닌 점수제(미국의 SAT처럼)를 도입하든가, 전형 때 동일 성적자에 한해 내신성적을 반영한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간단한 해결책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최근의 상대/절대평가 논란에서 상대평가의 치명적 약점이 논의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상대평가에는 어떤 약점이 있길래 서구 선진국에서는 예외 없이 내신과 대입시험이 모두 절대평가일까?

 첫째, 상대평가는 ‘다양한 교육’과 양립하기 어렵다. 2005학년도 수능 국사가 문이과 공통필수에서 문과 선택과목으로 전환되었을 때, 서울대가 수능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과생 중 국사 선택자가 60%대에서 지속적으로 줄어 지금은 10%대다. 상대평가하에서 서울대 지원자들과 경쟁하여 석차에서 밀리면 치명적이므로, 상위권 학생을 제외하고는 국사를 적극 기피한 것이다. 물리는 선택과목화 초기에 ‘과학고생들이 물리를 많이 선택하더라’는 풍문 때문에 기피과목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상대평가에서는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이 역설적으로 기피대상이 된다.

 둘째, 상대평가는 교권침해다. 교수나 교사가 100명 중에서 A를 35명에게 주어야겠다고 판단했는데 대학본부나 교육당국에서 ‘30%만 줘라’고 요구한다면 명백한 교권침해다. 서구 선진국에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대학의 일부 대형 교양강의에서 A의 비율을 ‘권고’하는 정도다.

 셋째, 상대평가는 경쟁과 부담감을 불합리한 수준으로 높인다. 예를 들어 수능을 쉽게 출제한다 해도, 상대평가하에서는 어차피 석차를 높이기 위해 경쟁자를 제쳐야 하므로 학생들의 부담감이 크게 줄지 않는다. 절대평가가 되면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고 요구받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므로 불합리한 과잉경쟁이 상당 수준 제어된다.

 넷째, 상대평가는 협력적 인성의 형성을 방해한다. 회사에서 일하는데 옆자리의 동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사장님은 당연히 옆 사람을 도와주라 말한다. 조직 내에서 협력이 잘 이뤄져야 조직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교에서는 정부가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높인다고 발표할 때마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상대평가는 누군가가 올라가려면 누군가가 내려가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지, 엄밀히 보아 ‘평가’라고 볼 수 없는 제도다.

 왜 대학생보고 궐기하라고 하냐고?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에, 최고 수준의 두뇌가 모이는 로스쿨에, 서남표 총장 시절 카이스트에 상대평가가 도입되었고, 지금 교육부는 상대평가를 사실상 보편적으로 대학들에 요구하고 있다. 교수들이 온정주의에 빠져 후한 성적을 주기 때문이라고? 왜 그걸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학생에게 부담을 넘기는가? 전국의 대학생들이여, 궐기하라. 그대가 일베든, 종북이든.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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