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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4 18:34 수정 : 2014.09.14 18:34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 전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올림픽 휴전’이라고도 한다. 이제 인천 아시안게임이 시작된다. 북한 선수단을 둘러싼 이념갈등도 뜨거워지고 있다. 인천이 낡은 이념의 전쟁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 정신이 발휘되는 스포츠 행사다. 인천에서 과연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이 지켜질 수 있을까?

스포츠는 화해의 수단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흑인정권이 들어섰을 때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 스포츠의 상징인 럭비를 흑백 화해의 계기로 활용했다. 1995년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만델라는 “인종의 장벽을 부수는 데 스포츠가 정부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 일어난 영화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은 또 어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독일과 영국군은 전투를 멈추고, 참호에서 나와 시체를 치우고, 공동장례를 치른 후 축구를 했다. 전쟁터에서 얼어붙은 인간의 존엄성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는 또한 화해의 다리다. 1971년 일본의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의 일이다. 실수로 미국 선수가 중국 선수단의 버스에 올라탔고, 어색함을 깨기 위해 중국 선수가 자신이 들고 있던 중국의 황산이 그려진 깃발을 선물로 주었다. 버스에서 중국의 깃발을 든 미국 선수가 내렸을 때 사진기자들은 이 역사적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핑퐁외교’는 그렇게 우연으로 시작되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은 스포츠가 가져다준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중국은 미국 선수단을 초청했고, 닉슨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북관계에서도 체육교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활발했던 분야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우승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한반도기가 올라갈 때, 남북 선수단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울었다. 스포츠는 그만큼 울림이 크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이 공동입장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올림픽 정신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화해와 평화를 지키자는 고대 올림픽의 정신 말이다.

물론 스포츠는 폭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운동장이 화해의 꽃이 아니라 원한의 피로 물든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의 축구전쟁을 기억하는가? 축구장에서 발생한 폭력이 전쟁으로 이어져 수천명이 사망했다. 올림픽을 피로 물들인 폭력의 흔적들도 무시할 수 없다. 스포츠의 본질을 망각한 야만이 아닐 수 없다.

인천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인공기 게양 문제는 이해하기 어렵다. 2013년 평양에서 열린 국제역도대회에서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연주된 적이 있다. 평양도 지키는 국제적인 규칙을 왜 인천은 지키지 않는가? 인천은 남북관계 악화를 반영한다. 그렇다고 스포츠의 공간에서 대북 적대감을 토해낼 것까지는 없다. 주최국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외교의 부활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야만으로 타락해야 하는가? 아시아인들이 인천을 지켜보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몇 년 남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올림픽을 주관할 자격이 있을까? ‘올림픽 휴전’의 정신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진심으로 제안한다. 아시안게임 기간만이라도 이념전쟁을 멈추자.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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