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7 19:54
수정 : 2014.09.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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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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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나 물체의 참모습과는 상관없이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허상이라고 한다. 이런 허상 중 하나가 국회의 역할에 대한 이해다. 의회(parliament)는 그 어원을 찾아보면 ‘수다 떠는 장소’(talking shop)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역 또는 직능 대표성을 지닌 의원들이 모여 각자 대표하는 이들의 이해와 요구, 선호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끄럽게 말싸움하는 곳이 바로 의회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의회가 떠들썩한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법을 통해 여러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는 것은 의회의 본래적 기능이다. 따라서 의회가 무능해 법안이 시의성을 잃는 것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걸 발목 잡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입법권은 의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입법권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법안에 대한 표결 처리만을 뜻하진 않는다. 하나의 법에는 이해당사자가 있기 마련이고, 찬반 또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정 법에 대해 언제, 어떻게 통과시킬지의 권한도 의회가 향유하는 입법권의 내용이다. 정부 관료의 발목 운운은 국회의 헌법적 권능인 입법권에 대한 왜곡 또는 무지라 할 수 있다. 헌법에 의해 정부도 법안 제출권을 갖지만 그 법안을 어떻게 다룰지는 전적으로 의회의 몫이다. 결국 의회가 무능하게 비치도록 해 행정부가 우위에 서려는 의도, 즉 제도적 권력다툼이 본질이다.
또 하나의 허상이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논란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다수당이 직권상정해 강행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 법이 다수당이 아니라 소수당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지 여부다. 과연 그럴까?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를 하고 표를 호소해야 하는 정당이라면 야당이라고 해서 여론을 무시하고 법안 처리를 무작정 막을 수는 없다. 실제로 야당이 선진화법을 무기로 막아 통과 안 된 법안이 뭐고, 그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찾기 어렵다. 정부 여당이 미리 생각하고 있던 입법 일정표와 다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그걸 선진화법의 폐해라는 건 억지다.
사실 국회선진화법으로 손해 보는 쪽은 야당이다. 과거의 야당은 본회의장 점거 등을 통해 선명야당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여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야당다운 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미디어시대에는 자신의 반대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감성적 호소가 중요한데, 선진화법의 등장으로 이게 어렵게 됐다. 몸싸움을 벌일 수도 없어 무력한 야당으로 비치기 일쑤다. 그래서 결국엔 실익이 없음에도 원외로 나가는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국회선진화법은 타협을 강제하는 제도다. 정치를 살리자는 취지다. 제도 탓으로 무능을 숨기기보다 정치를 통한 타협이 답이다. 다수당은 양보할 줄, 소수당은 질 줄 알아야 한다.
예산 심의에 대한 허상도 있다. 지역구 제도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많이 따기 위해 노력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지역구 선거제도를 운영하면서 국회의원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국회가 예산에 개입하는 게 왜 잘못인가? 헌법 54조 1항에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고 돼 있다. 정부가 짠 예산안은 전적으로 옳고, 국회의 개입은 잘못이라는 이분법은 탈헌법적 발상이다. 그런데 이런 허상들이 지금까지 사라지기는커녕 더 강조되는 건 왜일까? 그런 왜곡된 허상을 누군가 강하게 지탱하면서 끊임없이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상이 곧 실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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