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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1 18:28 수정 : 2014.09.21 21:34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되었다. 307년 만에 영연방에서 독립하려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역사적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많은 화제를 낳았지만, 투표 결과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청년정치’가 강화되는 흐름이다.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투표에 처음으로 16살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우리의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청소년을 민주사회의 주권자로 인정한 것이다.

유럽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시민권은 꾸준히 확대돼왔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선 대부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18살에 부여되며, 선거권을 점차 16살로 낮추는 추세다. 독일에선 이미 지방의회 선거에서 선거권이 16살로 낮아졌다. 매체환경의 변화에 따라 청소년의 정치의식이 높아졌다는 점,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에 적극 수용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점, 청소년들을 이른 시기에 정치에 참여시킴으로써 민주시민 의식을 높일 수 있다는 점 등이 청년정치 확대의 이유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선거권 19살, 피선거권 25살의 현행 제도는 선거권, 피선거권 모두 18살이라는 ‘세계적 표준’에 한참 뒤처져 있고, 선거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인식 자체도 극히 미미하다. 심지어 우리 사회의 지배층은 젊은이들의 정치참여를 장려하거나 정치의식을 고취하기보다는, 이를 차단하고 겁박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안녕 대자보’가 학교에 퍼져나갈 때, 세월호 사태에 대한 논의가 학생들 사이에 번져갈 때 교육부가 보인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상기해보라. 유럽에서라면 이런 것들은 정치교육의 생생한 자료, 정치토론의 살아있는 소재로 학교 수업에 적극 활용됐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정치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인식이 국민의 우민화를 꾀하는 기득권층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반정치의 정서, 정치혐오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니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력감과 무관심은 깊어만 가고, 젊은층으로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고착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체질이 점점 더 허약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고등학생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한다. 독일에서는 고1이면 도지사, 시장, 교육감을 자기 손으로 뽑고, 고3이면 스스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최초의 ‘고등학생 국회의원’ 아나 뤼어만이 필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당시 아나는 10대가 의회에서 대표돼야 할 이유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며 “불평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는 조언을 또래의 한국 친구들에게 건넸다.

스코틀랜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16살 청소년이 투표권을 갖는다고 상상해보라. 16~18살에 해당하는 약 200만명(2013년 기준)의 젊은이가 새로운 유권자가 되어 대통령과 국회의원, 도지사, 교육감을 뽑을 것이다. 고등학생 유권자들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에 정당들은 경쟁적으로 이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낼 것이다. 대학의 서열화는 자취를 감출 것이고, 살인적인 대학입시도 사라질 것이며, 학교교육은 비로소 정상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학습노예’ 상태에서 마침내 해방될 것이다.

꿈같은 얘기지만, 꿈이 아니다. ‘18살 선거권, 피선거권’만 실현돼도 유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18살 선거권, 피선거권은 다른 나라에선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요 일상이다. 세계적 표준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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