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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2 18:20 수정 : 2014.09.23 10:23

[세상 읽기] 한국 언론 믿을 수 없다 / 이명원
정권이 언론 나팔수 취급하면 정권 불신 커져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한 시민단체의 고발은 외신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외신들은 이 문제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예 문제가 아닌 언론자유의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 1월6일 춘추관에서 열린 박 대통령의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 청와대 사진기자단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종이신문을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요즘은 타임라인을 보는 편이다. 지면을 통해 뉴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해 보는 노력은 약화되는 듯하다. 대신 뉴스 접근 통로를 응축시켜, 제한된 경로 안에서 신뢰할 만한 뉴스를 확인해 보는 일상이 만들어졌다.

방송 뉴스도 시청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는 공정보도나 탐사보도 기능이 얼마간 살아 있었지만, 이후로는 거의 모든 뉴스보도가 갈등하는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거나 정권의 의지를 중계하는 식으로 변질돼 뉴스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권 감시·비판 기능이 소멸됐으니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른바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는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택시와 식당 같은 공간에서 귀에 거슬리는 해석적 편견을 꾸역꾸역 듣는 일은 고역이다. 더구나 뉴스의 남녀 앵커들이 연예프로도 아니건만 큰 소리로 웃고 떠들거나 추임새를 넣으며, 자질이 떨어지는 패널의 ‘음모론’ 앞에서 춤을 추는 풍경은 안타깝다.

아마 많은 수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생산·소비하고, 장년층은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정보를 생산·소비하는 것 같다. 이 미디어 활용의 차별적 장 안에서는 ‘사실’에 대한 입장과 해석이 차별적인 ‘기호공동체’가 구성되며, 이것이 정보 생산/소비 주체를 당파적으로 연합시키는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모든 정보에는 이른바 ‘노이즈’라는 것이 있고, 거기에 더불어 에스엔에스 특유의 정념이 투사되고 증폭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에도 정보수용자들은 게시된 정보를 기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적·합리적 판단에 따라 ‘사실’과 ‘징후’를 읽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 가령 지난 대선 당시 여러 국가기관의 조직적 ‘여론조작’의 예에서 확인되듯, 합리적 정보생산과 비판적 수용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장의 질서를 왜곡하고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면, 정보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공론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산케이신문> 기자의 ‘대통령의 7시간’ 보도와 이를 번역 보도한 <뉴스프로> 번역자에 대한 검찰 조사는 외교적 마찰과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국제적 비난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대착오적 사건이다. 이 사건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여럿이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해석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화된 보도의 ‘맥락’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 언론 믿을 수 없다”가 아닐까. 얼마나 한국 언론의 보도 기능을 불신하면 평소 ‘혐한 보도’로 악명 높은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시민들이 귀를 기울이겠나. 이는 한국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이 정권에 대한 불신 감정 역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나는 어떤 편인가. 나 역시 한국에서 ‘보도되지 않는 진실’이 있다고 판단되면 관련 외국 언론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여 기사와 자료를 검색·대조하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아베정권 등장 이후 일본의 시민들 역시 그러하다. 일본 언론 어디에서도 후쿠시마의 진실을 찾아볼 수는 없으니까.

정치권력이 언론을 나팔수 취급하면, 결국 정보수용자는 매체비평가 비슷하게 진화하면서, 국제적 뉴스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된다. 권력이 독재화되면 거꾸로 미디어 문해 능력이나 정보검색 능력이 향상되는 반작용이 나타난다. 아이러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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