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23 18:29
수정 : 2014.09.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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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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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청소년들의 외침이 응답을 얻어가고 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강원, 제주, 전북, 광주 지역에서 ‘9시 등교’를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교육정책인 ‘9시 등교시간 도입’이 정책으로 반영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뚝심이 돋보인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에서 학교장의 재량으로 특정 학교만 등교시간을 결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의지를 갖춘 논의의 촉발이 필요했고, 정책적인 명분과 계기가 있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재정 교육감은 “타협은 없다”며 ‘9시 등교’ 전면 시행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학교 현장의 의사를 반영한 자율적 결정을 열어두는 정치적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의견수렴’ 부족을 지적하는 절차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결정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정책 결정에 누구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반영할 것인가는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다.
이재정 교육감은 말한다. “우리 교육은 한 번도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다”, “9시 등교는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교육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한마디는 우리 사회가 약간의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할 충분한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 청소년들은 단 한 번도 교육현장의 주체였던 적이 없었고 언제나 교육받는 객체에 불과했다. 학생이 빠진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정책의 1순위로 반영한 것이다. ‘9시 등교’ 논의는 교육제도를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교육현실에서는 이 자체가 사건이고 혁명이다.
“9시 등교가 무엇이 그리 급한 일인가?”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9시 등교’는 우리 교육문제의 핵심이고 상징이다. ‘아침잠’과 ‘아침밥’의 문제도 청소년 시기에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우리 교육의 정책적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처럼 현실을 핑계로 입시 위주 교육의 관성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창의력을 키우는 자율 교육, 경쟁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공동체 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 방향의 단초를 열 것인지의 문제다. ‘0교시’가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9시 등교’는 ‘공교육 정상화의 열쇳말’이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의 실마리다.
안전한 등교, 수업시수 축소, 교과목 선정의 편향성, 맞벌이 부부의 문제 등은 아이들의 행복, 그 상징인 ‘9시 등교’를 상수로 두고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다. 개선점을 찾아가는 방법 또한 전문가들의 식견도 필요하겠지만, 학생들의 힘찬 주장을 청취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균형잡힌 생각들을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끝내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
이번 ‘9시 등교’ 논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좀더 인간적이고 효율적인 입시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성장속도가 아닌 방향’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도도한 흐름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해야 할 것이다.
학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공간인가? 이제 학교라는 공간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 시작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9시 등교’ 논의를 계기로 ‘시험 축소’, ‘학생들이 함께 만드는 수학여행 추진’, ‘상벌점제(그린마일리지) 폐지’ 등 청소년들이 요구하는 정책적 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첫걸음을 디뎌야 할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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