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24 18:25
수정 : 2014.09.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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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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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어린아이의 눈에도 국민에게는 관심이 없고 옷 입기만 좋아하는 임금님과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신하들이 참 어리석어 보였다. 임금님이 보이지 않는 새 옷을 입고 국민들 앞에서 행진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얼마나 부끄럽던지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노인연금 후퇴로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느닷없이 유치원 누리과정 확대와 돌봄교실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표적인 복지공약이던 누리과정과 돌봄교실의 확대 예산을 정부의 보건복지 예산이 아니라 지방교육지원청의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4년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확대로 부족해진 교육예산의 책임을 무상급식으로 떠넘기더니 2015년에는 아예 누리과정 예산으로 신청된 2조1000억원과 돌봄교실 예산 6000억여원을 전액 삭감했다. 대통령은 그럴싸한 말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는 그 책임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몹쓸 버릇이 있다.
세월호 사건 뒤 정부는 안전예산을 올해보다 17%나 올렸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예산안을 보면 정작 늘어난 것은 직접적인 재난대응 예산이 아니라 방재분야나, 위험도로 및 노후철도 시설보강이나 개선, 박 대통령이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한 학교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불량식품을 단속하고 예방하는 데 쓰이는 예산이 더 많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소방관 확충, 장비지원은 지자체로 떠넘겼다. 심지어는 지난여름 전남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다 추락한 헬기를 새로 구입하는 비용조차 자치단체로 떠넘겼다.
대통령과 정부의 거짓말과 책임 떠넘기기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 이전의 복지공약은 대부분 후퇴했고, 4대 중증질환의 치료비는 전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말도 바꿨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던 호언장담은 물거품이 되고, 담뱃세·자동차세를 늘려도 복지 증대는 미미하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달하고도 사흘이 지난 뒤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 그러나 유가족의 40일 넘은 단식과 하소연에도 끄떡 않던 대통령은 세월호 관련 법안은 입법기관인 국회의 몫이라고,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물론 그동안 거짓말로 국민을 모독한 대통령이 박 대통령 한 사람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한테 운하가 아닌 4대강 살리기라며 국민이 낸 세금 수십조를 쏟아부어 4대강을 죽였다. 그런데도 전 대통령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기념재단을 만들고, 현 대통령은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뒤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루고 비애감에 빠져 괴롭다던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 만에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부르댔다. 그리고 거짓말은 계속된다. 절대 민영화는 없다더니 공기업을 개혁한다며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철도, 의료, 지하철의 민영화 꼼수를 부린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거짓말로 계속되는 국민모독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국민의 존엄성을 되찾는 길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사기꾼에게 놀아난 옷밖에 모르던 임금님, 거짓인지 뻔히 알면서도 권력에 굽실거리며 진실을 외면하던 관료들. 그들의 거짓과 어리석음에 진실을 말한 것은 어린아이였고, 이에 용기를 낸 국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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