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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5 18:23 수정 : 2014.10.05 18:23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살만 루슈디가 1988년에 출판한 책 <악마의 시>는 무슬림들의 격렬한 항의에 직면했지만 영국에서는 휘트브레드 문학상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사회적 소란과는 상반된 문학적 찬사를 받았다. 무슬림들은 이 책이 문학의 이름을 빌려 예언자를 조롱하면서 이슬람의 신성함을 모욕하고 있다고 보고 책의 판매금지와 신성모독죄 처벌을 요구하였다. 2005년 덴마크 일간지에 실렸던 이슬람을 풍자한 만평 사건도 비슷한 소용돌이의 경로를 밟았다. 그러나 영국과 덴마크 정부는 표현의 자유와 법의 지배라는 두 가지 원칙을 근거로 무슬림들의 어떤 처벌요구도 거부하였다.

이 사건들에서 제기된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해 정치철학자 파레크와 배리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파레크는 만약 아우슈비츠의 비극적인 희생자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그들의 고난을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는 작가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 대해 분노하고 소설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작가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다고 본다. 이 경우 작가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사회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 즉, 작가는 사회의 관용을 이용해 자신의 권리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배리는 조롱하고, 비웃고, 희화화할 수 있는 권리는 표현의 자유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지켜져야 할 보편적인 인권의 일부로서 특정 문화나 종교의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가치이지만 배리의 주장처럼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는 절대적 권리일까? 최근 한 가지 설득력 있는 제한의 기준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집단적 정체성을 대상으로 한 비하와 혐오 발언은 처벌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인종에 대한 차별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누구나 선택 가능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 만약 종교에 대한 비판이 제한되어야 한다면 특정 종교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믿을 자유를 가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방해할 자유까지 갖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슬람의 경우 아랍인이 신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 때문에 종교에 대한 비판이 사실상 인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준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혐오발언의 처벌은 일반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혐오발언의 특징은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과 개인을 대상으로, 구성원의 인격을 무화시키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은 다음, 사회적 적대감의 대상으로 몰아 차별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유럽이 인종 갈등을 고려해 왔다면 우리는 안보 문제를 고려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흔들림 없는 굳건한 가치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미 국가보안법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집단적 정체성으로서 특정 지역이나 성적 차별 발언에 대해 어떤 처벌도 불가능하다는 자유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호존중과 관용 가운데 일탈적인 혐오발언에 대해 법에 의한 처벌보다는 도덕적 비난을 통해 시민사회 스스로 충분한 자정능력을 갖춰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점점 복잡해져 가는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형법 개정 등을 통해 혐오발언을 처벌해야 하는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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