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14 18:40
수정 : 2014.10.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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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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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이 인천을 다녀간 뒤에 남북관계는 심각한 파국을 불러올 두번의 위기를 겨우 넘겼다. 첫번째는 7일 아침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사건이다. 이날 우리 고속함의 경고사격에 북 함정이 기관포로 응사하자 합참은 지체 없이 북 경비정을 격파할 것을 지시했다. 우리 고속함에서 사격이 시작되자마자 주포인 76㎜ 함포는 불발탄에 막혀 고장 났다. 일이 꼬이려니까 40㎜ 기관포마저 불발탄으로 사격이 되지 않았다. 이를 수리하기 위해 고속함을 뒤로 뺐다. 이에 참수리 고속정이 40㎜ 기관포를 발사했으나 하나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포를 수리하는 동안 10분의 시간이 낭비되었고 북 경비정은 어선 사이로 사라졌다. 작전에 실패한 군은 “규정상 30분 안에 수리하게 되어 있는 불발탄을 10분 안에 수리했으니 잘된 일”이라고 궁색하게 말한다. 당시 작전을 지휘하던 합참의장도 “왜 히스토리(역사)가 안 됐지?”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 이 고속함은 엔진도 자주 고장 나서 적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서버릴 수도 있다. 자칫하면 승조원이 전멸될 수도 있는 위험한 함정이다. 이날 합참은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북 경비정에 대응사격을 하였다”며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마치 군이 남북대화를 고려하여 신중한 대응을 한 것처럼 보였다.
두번째는 지난 10일 민간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 전단을 실은 풍선을 날리기 시작하자 북이 고사총으로 이를 향해 사격을 한 일이다. 오후 3시55분에 북의 사격이 시작되어 요란한 총성이 들렸다. 그러나 군은 사격원점과 화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4시50분이 되어서야 중면 사무소에서 북의 총탄을 발견했다. 그리고 뒤늦은 5시40분께에야 북의 지피(GP)를 향해 사격을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공중사격이었다. 그런데 후에 우리의 아서-K 레이더가 북의 사격지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만일의 포격전에 대비하여 우리는 자주포와 F-15K까지 대기하였고 북한은 장사정포를 준비시켜 놓은 아찔한 상황이 이렇게 어이없게 끝났다.
교전 사실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은 청와대는 “군이 알아서 하라”며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작년에 국방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만일 북의 도발이 있을 경우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말한 적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가더라도 현장 군 지휘관에게 맡기고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 때문인가? 세월호 참사 당시의 ‘사라진 7시간’처럼 박 대통령은 그 위기의 사흘간 어떤 위기관리를 했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에는 ‘사라진 70시간’이다. 국군통수권을 내려놓고 위기관리를 하지 않은 청와대는 이런 불발탄 군대, 오발탄 군대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다만 전승의 영광을 누릴 기회를 놓친 군 지휘관들 사이에서만 책임론 공방이 있을 뿐이다. 그런들 어떠하랴. 13일에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이전의 교전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며 “남북협상을 통해 5·24 조치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우아하게 말했다. 이건 순전히 무능한 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뜻밖에 단호한 행동을 자제하는 남한을 지켜본 김정은 위원장이 급기야 지팡이를 짚고 북 언론에 나타났다. 그래서 남북대화가 촉진되는 이런 상황은 무능력한 정권과 무능한 군도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아이러니 아닌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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