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16 18:43
수정 : 2014.10.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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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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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사회적인 활동입니다. 책이나 논문을 읽는 일도 글쓴이의 주장을 듣고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지요. 선생과 학생 사이의 소통은 물론이고, 연구자들끼리의 소통도 중요합니다. 공동연구가 일반적인 이공계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최신 연구 성과는 대부분 영어로 발표됩니다. 대학원생들이 영어로 발표하고 질문하며 토론하는 연습을 해보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헤아려 저는 연구실 정기 세미나를 매주 영어로 진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대학원 교과목 하나도 영어로 강의하기로 했고요. 강단에 첫발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니, 지금처럼 대학이 영어강의를 강조하진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영어강의에 동의하고 한 학기를 함께한 수강생들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더 컸다고 말하면서 제게 다시 한국어로 강의하기를 권했습니다. 결국 대학원 영어강의는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제게는 하고 싶은 얘기를 영어로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고, 학생들에겐 제대로 이해하기도 만만찮은 내용에 영어라는 추가적인 부담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연구실 세미나도 1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대학원생들의 학습능력은 엇비슷했지만, 영어능력은 저마다 달랐던 탓입니다.
그 뒤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언어는 물론 한국어였습니다. 영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 이전에 언어와 논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어를 조리 있게 잘 구사하는 사람이 영어로도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해내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습니다. 어색한 발음으로 어눌하게 말해도 논리의 구조나 내용이 좋으면 듣는 이들은 경청하기 마련이지요. 별 내용 없는 말을 유창하게 하느니 더듬거리더라도 또박또박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저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소통하는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국제화는 대학평가의 중요 지표가 되었습니다. 영어강의 비율은 국제화 지표의 핵심 변수지요. 대학마다 그 비율을 높이려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임 교수한테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하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 대학이 그렇습니다. 영어강의 비율은 올라갔고, 국제화 부문에서 저희 대학은 좋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영어강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시절에 영어 강의와 세미나를 시도했던 제가 지금은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어강의를 마다하고 있습니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습니다.
영어강의는 필요합니다. 대학엔 영어강의를 잘하는 교수도 있고, 영어강의에 대한 수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영어강의를 반강제로 하게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어떤 언어를 선택하든 목적은 소통입니다. 억지로 하는 영어강의가 소통을 어렵게 하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대학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비교육적인 태도입니다. 평가가 교육을 왜곡한다면, 참여하는 대신 평가제도의 문제를 말해야 합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교수의 자발적인 영어강의와 좋은 한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려는 교수의 한국어강의 사이에서 학생들이 행복하게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핵심적인 교과목은 영어강의와 한국어강의가 함께 개설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임 교수들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하게 하는 것도 인제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학교 선생들한테 특정 언어를 강요하는 건 일제강점기에나 있었던 일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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