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19 18:38
수정 : 2014.10.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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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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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의 대학평가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고려대 총학생회가 ‘대학평가 거부운동’을 공식 선언한 이후, 10월6일 고려대를 비롯해 경희대, 국민대, 동국대, 서울대, 성공회대, 연세대, 한양대 등 8개 대학 총학생회가 ‘대학 줄세우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기자회견을 했고, 이어 11일에는 대학평가 반대 선언에 참여한 총학생회들이 한양대에 모여 ‘누구를 위하여, 대학은 줄 서는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대학의 학생대표기구가 연합하여 ‘대학평가 거부’를 선언한 것은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를 실시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선언이 지난 20년간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대학이 겪어온 ‘거대한 몰락’을 멈추게 하고, 대학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거대한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대학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학생들이 신문사 대학평가를 거부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그것이 대학 순위 발표를 통해 대학을 줄세운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신문사 대학평가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대학 서열화’와 ‘학벌사회’를 더욱 고착시켰다.
신문사 대학평가가 초래한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신문이 대학평가를 주도해오는 동안 대학이 부지불식간에 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대학은 대학의 본질을 훼손당하며 자본권력에 자원(인적자원), 기술(특허), 이데올로기(기업담론)를 제공하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학평가는 이 식민화 과정에서 자본이 활용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였다. 재벌언론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만든 지표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였고, 대학은 이런 평가를 거부하기는커녕 이들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경쟁적으로 자신을 ‘개혁’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자본에 예속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물론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신문사는 평가의 ‘객관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평가지표는 숫자로 환원된 가치다. 재벌신문이 제시하는 평가지표란 자본이 바라는 대학의 모습을 수치화한 것일 뿐이다. 거기에 담긴 것은 자본의 속셈이다. 대학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이고, 비판적인 학문을 억압하려는 의지다. 아무도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는 일개 언론사가 철저히 자본의 관점에서 만든 자의적인 지표를 가지고 들이대는 대학평가에 ‘지성의 전당’을 자처하는 대학이 굴종하는 현실은 한편의 희비극에 가깝다.
자본에 의한 대학 식민화의 결과는 참담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소불위의 자본권력을 견제할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정치에 대한 경제의 우위가 고착화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세 속에서 자본의 독단적 권력을 제어할 학문적 도덕적 권위마저 무력화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학문세계의 황폐화도 심각하다. 자본권력에 비판적인 학문영역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퇴출당하거나 축소되었다. 특히 대학의 ‘영혼’인 인문사회과학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생의 지적 수준도 크게 하락했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기능적, 실용적 지식인 까닭에 인간과 사회,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는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재벌신문의 대학평가는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대학사회와 학계에 던져진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다. 학생들이 움직였다. 이제 교수들이 응답할 차례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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