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2 18:35
수정 : 2014.10.2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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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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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월 두달 동안 학교나 단체의 독서행사에 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이 시대의 희망,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이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희망을, 그 대안을 알고 있는 걸까?
공부보다 노는 게 더 중요한 초등학교 1, 2학년의 수업시수를 늘리면서 안전교과를 신설한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정책을 입안한 자를 찾아가 당신은 안전교육을 하면 우리 사회가 안전해진다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는 날림으로 지어진 건물에 깔려 청춘들이 죽어도, 군대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죽어도, 요양병원의 부실한 관리로 노인들이 개죽음을 당해도 국가의 책임은 없다.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도 그저 선장과 선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다. 대통령이 공약했던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확대 예산마저 지방교육청에 어물쩍 떠넘기고 교육청 책임이라고 으르대면 그만이다. 자신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계속 떠넘기는 국가의 국민이 교과서로 배운 안전으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든다? 참 편하고 쉽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양심과 염치, 책임과 도덕을 교과서가 아닌 사회로부터 먼저 배운다. 교과서로 배운 가치는 그저 지식이나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아이엠에프 이후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계속 축소시켜왔다. 전 정부와 현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규제완화를 우선했다. 덕분에 기업의 자유와 안전은 든든하게 보장되었지만 개인의 자유와 안전은 통제되고 위험에 빠졌다.
이 위험하고 이상한 나라에서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부모들은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자녀에게 무조건 경쟁에서 살아남으라고 가르친다. 정의니 진실이니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오로지 성공해서 너의 안위를 지키라고 가르친다. 공교육을 믿지 못해 사교육 시장으로 아이를 떠밀고,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밟고라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라 다그친다. 그렇게 아이들을 한 줄로 줄세우는 사회에서는 학교마저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전문계고로 등급이 매겨지고 청소년기에 이미 대다수가 패배자가 된다.
그 패배자들은 앞으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철도와 건물과 도로, 교각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고,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늘 불안정한 노동과 강요당한 소비로 주머니는 텅텅 빌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 더는 견딜 수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만이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며칠 전, 더는 장애 아들을 부양할 수 없어 세살배기 아들을 안고 투신을 한 스물아홉살 아비처럼, 일등만 강요당하는 학교와 불행한 가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목숨을 던진 청소년들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가난한 세 모녀처럼 말이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 죽음은 흔한 일이 되었고,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으니 말이다.
어디를 봐도 희망은 없다. 대안도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삶을 놓아야 하나? 아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내게 대안을 묻는 청중에게 호소하듯 대답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다 같이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처럼 그렇게 가라앉을 수는 없다. 서로 손을 잡고 위로하며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 떠오르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저들이 세운 한 줄의 질서, 법, 대열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열들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혼자서 아등바등 저들이 서 있는 곳까지 오르려고 하는 것보다, 사회에서 강요된 패배를 받아들이기보다 ‘우리’가 힘을 모아 저들만의 안전과 풍요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되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대안이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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