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9 18:35
수정 : 2014.10.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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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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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숱한 법안 가운데 ‘김희정 법안’(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이 있다. 언론보도가 몇번 있었으니 사회적 논의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 법안에 대해 충분한 관심과 토론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법안 발의 취지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출산력 하락은 모든 부문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부터는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초과하고, 대학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2023년엔 초과 정원이 16만명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적 조정을 방치하면 파괴적 결과가 일어날 것이며 지역간 균형도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합리적인 사회적 조정 방안을 찾긴 찾아야 한다.
하지만 법안을 들여다보면 합리적 조정보다 대학의 위기를 권력 확장의 계기로 삼는 교육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구조조정을 평가에 입각해 시행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며, 평가에 기초해 구조조정을 심의할 구조개혁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 그리고 교육부 장관이 정원 조정에 대해 행정적 권한을 넘어서 법적 권한까지 가진다는 것이다. 평가위원회와 구조개혁위원회를 교육부 장관이 조직하게 되니 교육부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 셈이다.
현재 사태의 근본원인은 출산력 저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출산력 저하가 뻔히 예상되는 1990년대 중반에 오히려 교육부가 대학의 무분별한 설립을 방치하고 어떤 면에서는 조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교육부의 권력 확장은 좋게 말하면 결자해지를 향한 의욕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사고뭉치 문제아가 학생회장 시켜 달라는 격이다.
이 법안에는 ‘큰손들’ 간의 타협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정원 감축은 어느 대학에나 큰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 소재 사립대학들이나 지방 국립대학에 파산 위기를 뜻하진 않는다. 위기는 수도권의 작은 사립대학과 광역시에도 걸쳐 있지 않은 지방 사립대학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강한 저항도 이런 대학들의 재단, 교수와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에게서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그 가운데 가장 힘센 재단에는 파산한 대학의 잔여재산 처분과 관련된 특례들을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항 가능성이 있는 집단 가운데 일부를 포섭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법안을 들여다보면 사학 재단과 교육부, 그러니까 한국 대학의 제도적 조건에서 가장 힘센 두 집단이 ‘우정 어린’ 악수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 외부에 존립하는 중요한 공공자산의 대표적인 예는 공익법인이 운영하는 병원, 학교, 사회복지기관들이다. 이 가운데 공공자산이지만 사실상 사적으로 운영되고 지배되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사립대학들이 그렇다. 전통 있는 종교재단이 운영하거나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이 아닌 사립대학의 운영은 불투명하고 음습한 경우가 많다. 최근 상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나 올봄에 문제가 부각된 수원대 사태는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문제 많은 사학재단들에 대학의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자신의 토지를 대학으로 ‘개발’하고, 학생 등록금으로 교육용 기본 재산을 형성하고, 교비를 횡령하거나 교수와 교직원 채용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하고, 대학 적립금을 자기 기업의 특혜대출과 연결해온 이들이 출연 재산보다 더 많은 돈을 ‘깔끔하게’ 빼갈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몇몇 국회의원이라도 공공자산을 해체하는 이 위험한 법안과 싸워주길 바란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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