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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2 18:35 수정 : 2014.11.02 18:35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재의 헌법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이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이뤄낸 빛나는 성과다. 1987년의 개헌은 특히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도입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담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의 투표권을 회복한 시민들은 지난 여섯 차례의 대선에서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실망이 교차하는 치열한 경쟁에 직접 참여하였고, 헌법재판소는 사법심사의 이름 아래 국회와 정부의 주요 결정들이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검토하면서 법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 어떤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헌법이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개헌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 개헌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 등 3개의 선거 시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원포인트 개헌론 또는 단계적 개헌론이었다. 이 논의는 2004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거치면서 시민사회와 학계로 확산되어 기본권과 권력구조, 헌법 주체 등에 대한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민주적 개헌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개혁의 다양한 의제를 단순히 개헌으로 치환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활성화 등 중요한 정치개혁을 위축시키고 정치의 사법화만을 가속시킨다는 개헌 무의미론도 제기되었다.

최근의 개헌 논쟁은 시민사회의 개헌 논의 열기가 사라진 상태에서 여야 정치권이 먼저 제기함으로써 기성 정치권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연합하려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현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우리 사회 개혁의 다양한 차원을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단일한 차원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 논의에서 주목을 끌었던 국민에서 시민으로 헌법 주체의 전환, 시민의 기본권 조항 강화, 통일과 영토 조항 수정, 선거제도 개편과 경제민주화 강화 여부 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고, 정·부통령제를 포함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할 것인지,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의원내각제로 전환할 것인지 등의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헌법은 시민의 기본권과 권력구조라는 두 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치질서와 그 운영원리를 규정한 기본문서이기 때문에 사회개혁을 말할 때 자연스럽게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개혁이라는 복잡한 과제가 개헌이라는 단일한 구호로 수렴될 때 두 가지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다. 첫째는 헌법이 갖는 추상성으로 인해 개혁 논의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문제의 지나친 단순화로 사회개혁 논의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다. 둘째는 시민들이 참여해 추진하는 개혁 논의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정치 엘리트와 전문가들만이 배타적으로 참여하는 단순한 법률의 문제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헌법의 불완전성 때문에 생겨났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는 헌법 41조 3항에 따라 특별히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당장 필요한 선거구제 개편과 비례대표 확대 등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개혁은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개혁의 계기로서 개헌 논의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주체의 측면에서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의 활발한 참여가 있어야 하고, 내용의 측면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아닌 더욱 다원화된 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반영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 가치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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