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7 18:34
수정 : 2014.11.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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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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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시민후보로 나선 오나가 다케시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은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설’을 허용했던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에 대한 ‘응징투표’의 결과다. 예측보도 결과 당선이 확실시되었던 저녁 여덟시가 되자, 오나가 당선자는 현민들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면서 공약대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지사의 권한으로 막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나카이마 지사 역시 재임 이후에도 상당 기간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설’을 주장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는 중앙정부의 압력을 수용하여 결국 ‘현내 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여러 정치적 계산도 있었겠지만, 큰 틀에서는 일·미 양국의 여러 형태의 압력과 회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가장 큰 압력과 회유는 아마도 ‘돈’ 문제였을 것이다.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설’을 추진하는 것을 전제로, 일본의 중앙정부는 거액의 ‘오키나와 진흥예산’을 퍼붓겠다고 말했다. 그 반대의 경우 총리실은 ‘오키나와 진흥예산’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때로는 삭감하는 방식을 통해 오키나와 현정을 뒤흔들 수 있음을 암시했을 것이고, 다음 현지사 선거에서 다른 후보를 공천할 수 있음도 나카이마에게 암시했을 것이다. 나카이마는 여러 차원에서 손익을 따져본 뒤 ‘악마의 주사위’를 던졌고 결국 패배했다.
돈을 통한 정치의 왜곡, 더 나아가서는 민의의 왜곡은 집권세력이 손쉽게 여론을 뒤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핵심 기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헤노코에 신기지를 건설하게 되면 매년 3000억엔의 오키나와 진흥예산을 퍼붓겠다고 공언했다. 헤노코 신기지가 건설될 오우라만 매립 예정지에 있는 나고시 어민조합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이들 어민들은 정부의 회유를 받아들여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대신 수백년 동안 이어졌을 어민으로서의 생업을 포기했다.
이들 나고시의 어민들이 현재 오우라만에서 하고 있는 일은 기지 건설에 항의행동을 전개하는 또 다른 주민들을 해상보안청과 함께 ‘감시’하는 일이다. 중앙정부가 ‘돈’을 투입해 오키나와 현민들 상호간에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장을 잃어버린 어민과 어장을 지키려는 어민 사이에 물리적 충돌은 전혀 없다. 한 다리 건너면 이웃사촌이기 때문에 그들은 멀리서 서로를 관조하고 있을 뿐이다.
신기지가 건설될 헤노코의 캠프 슈워브 정문 앞에는 평소에도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오우라만 매립을 위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는 공사 트럭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중장비와 인력들은 일본 본토에서 파견된 것들이다. 주민들의 항의행동을 제압하는 것은 오키나와 현 경찰이나 미군이 아니라 일본 본토에서 파견된 ‘경비용역들’이다. 한국의 용역들과 비슷하게 그들도 중무장을 하고 있는데, 대개는 전직 자위대 출신의 비정규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도 오키나와 출신 경찰이나 주민들은 서로를 모호하게 관망하고 있다.
돈으로 오키나와인들을 ‘분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금권정치로 민의를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만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생명’의 근원적 기쁨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지 반대를 외치면서 오키나와인들은 듀공과 산호초를 지키자고 말한다. 고요한 날들을 지키자고 말한다. “생명이 보물이다”라고 외치기도 하는데, 이것이 좌우를 넘어선 ‘올 오키나와’의 본질이며, 오키나와적 평화주의의 본질이다. ‘돈정치’가 ‘생명정치’에 패했다. 오키나와는 ‘돈’이 아닌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회복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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