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5 18:44
수정 : 2014.11.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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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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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걱정이 앞섰던 그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비록 얼음은 녹았지만 전망은 몹시 어두웠다. 전국에서 두세 곳이나 가능할까? 지난 4년간 공들였던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가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모두들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4월16일 아이들의 희생을 계기로 온 국민이 도법 스님의 표현대로 ‘거룩한 마음’이 되었다.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 정글로 내몰았던 아이들을 새삼 가슴에 안아보는 그 ‘거룩한 마음’ 덕분에 2기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1기의 과제가 학교 혁신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2기의 과제는 ‘진보’라는 딱지를 떼고 우리 교육이 제자리를 잡도록 온 국민의 마음과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3개 교육청만 따로 모여 할 일은 정책 연구나 경험을 공유하는 것 정도이고, 이제는 진영의 입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만나자는 사람은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은 시간이 없다. 오라는 회의는 많은데 내용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뺑뺑이’ 돌다가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가 자꾸 생긴다. 기울어진 언론은 한 달 남짓한 허니문을 지나고는 빈틈을 놓치지 않는다. 교육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자사고, 누리과정 예산 등 기회만 되면 딴죽을 건다. 6개월 동안 참으로 열심히 뛰었는데, 중요한 포석을 놓기는커녕 당장 앞가림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를 만회하려고 참신한 정책을 추진하려다 보니 이벤트성 행사가 되는 경우가 자꾸 생긴다. 돌아보면 담당 부서에서 알아서 대처하면 될 것을 일일이 챙기다 보니 모든 간부들의 신경이 그리 쏠리고 조직 전체가 현안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칫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이제 현안에 매이지 말고 전략적 과제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교육청에는 터줏대감인 일반직 관료와 몇 년씩 들렀다가 나가는 전문직 관료가 있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복잡한 규정과 지침을 들먹이며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이 시작하는 교육청의 경우 관료가 ‘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할 일은 많은데 함께 들어간 몇 명에 의지해서 일을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관료는 철학과 이해관계가 분명한 ‘적’도, ‘영혼 없는 전문가’도 아니다. 오히려 갑자기 바뀐 정세 속에서 기존의 관행과 처세가 먹히지 않아 ‘불안한 영혼’일 따름이다. 그런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사람을 가르거나 이전 경력에 매이지 말고 열정과 업무 능력을 살려서 사람을 발탁한 후 그를 믿어주고 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 준비된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은 약점 있고 부족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교육청과 학교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10년을 내다보는 든든한 인력풀도 만들 수 있다.
‘거룩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 함께 아이들을 걱정하고 오늘의 교육을 고민했던 마음이 시들해지고,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여러 이벤트와 화려한 정책 발표를 한다고 ‘거룩한 마음’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무기력하거나 뺀질거리는 아이들이 이 암울한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그리고 또 이웃과 함께 헤쳐 나갈 힘을 얻게 될 때, 4월16일 아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반년이 지났을 따름이다. 아직 3년 반, 7년 반이나 남았다. ‘진보’를 뗀 전국의 우리 교육감들이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을 열어가는 모습을 기대해보자!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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