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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1 18:45 수정 : 2014.12.01 18:45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벼 수확이 끝난 가을 들녘에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소의 사료로 쓰기 위해 볏짚을 둥글고 커다랗게 말아 흰 비닐로 씌운 물체가 온 들판을 하얗게 뒤덮는다. 관련된 농부들은 베일이라 하고, 일반인들은 공룡알이라 부른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커다란 트랙터 뒤쪽에서 만들어져 땅으로 툭툭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공룡알은 20여년 전부터 김제들 같은 너른 들판에 처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산골 마을에까지 나타났다. 볏짚은 오랫동안 사람 손으로 묶었던 것인데 몇 년 전부터 트랙터에 붙인 기계를 이용해 사각으로 묶다가 공룡알이 순식간에 이를 대체하고 있다.

공룡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트랙터가 볏짚을 긁어모은 다음 마는 기계가 원통형으로 말아 그물로 감싸두면 다시 포장하는 기계가 들어가 접착성이 있으면서 꽤 질긴 비닐(랩)로 볏짚 덩어리를 감싼다. 마지막으로 집게를 가진 트랙터가 들어가 이를 밖으로 운반한다. 볏짚을 소 사료로 갈무리하는 일이 이렇게 변한 것은 농업이 쇠퇴해 가는 상황에서 농기계를 생산하는 기업이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자 하는 생존전략이기도 하고 농업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농촌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우선 소 사육 방식이 소수의 축산농가에 집중되고 기업화되었다. 하나에 수백 킬로그램 되는 공룡알은 보통 8만원 선에 거래되는데 정작 원재료인 볏짚만 따로 사면 값은 1만원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기계 값이다. 소를 키우는 축산농가는 이 일에 필요한 대형 기계를 갖추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사육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 공룡알은 비에 젖지 않기 때문에 야적이 무한정으로 가능해서 과거의 방식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볏짚을 확보해둘 수 있기 때문에 사육 규모의 제약을 풀어주기도 한다. 반면에 소를 소규모로 사육하는 농가는 값이 비싼 볏짚을 구입해서 쓰기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그것을 옮기기 위해 트랙터를 갖춰야 하므로 소 사육을 포기하게 된다. 유럽에서 산업혁명기에 영주가 마을의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양을 사육한 결과 농민들이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연상케 한다.

공룡알을 만들고 운반하기 위해서는 100마력 안팎의 대형 트랙터가 논에 서너 번 들어가 작업을 하기 때문에 땅이 무거운 기계에 짓눌리고 다져져서 흙 속에서 공기와 수분의 소통을 방해한다. 농토의 물리적 성격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이다. 가을에 사료용 풀씨를 뿌린 논은 봄에 풀을 수확하면서 이러한 수난을 다시 겪게 된다. 이런 일이 오래 반복된 땅은 필시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공룡알을 감싸는 데 쓰는 비닐은 농촌의 자연을 오염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공룡알 하나를 감싸는 데는 폭이 1미터쯤 되는 비닐이 스물여덟 바퀴나 돌아간다고 한다. 한 바퀴의 직선 길이가 5~6미터 되기 때문에 공룡알 하나에 들어가는 비닐의 길이는 100미터를 훨씬 넘기게 된다. 축산농가들에서는 볏짚을 쓰고 나온 비닐을 무단으로 불태우거나 함부로 버리는데, 불태울 때는 시커먼 연기를 오래도록 내뿜어 공기를 오염시키게 되고, 버려진 것들은 땅에 묻히거나 물에 휩쓸려 가서 하천을 오염시킨다. 지난여름 폭우가 쏟아진 뒤에 산골의 깨끗한 개울은 윗마을의 목장들에서 버려져 홍수에 떠내려온 비닐들이 개울가의 풀섶이나 나뭇가지에 빼곡히 매달려 장례식의 만장처럼 바람에 나부끼거나 개울 바닥에 있는 돌멩이에 걸린 채 물속에서 유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자들은 이를 농업의 현대화나 발전이라 말할 것이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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