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2 18:40
수정 : 2014.12.0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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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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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법 제432조는 ‘사실심의 전권(專權)’이라는 표제 아래 “원심 판결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은 상고법원을 기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증거의 채택과 사실의 인정 등 ‘사실’ 판단에 관한 문제는 하급심이 전적으로 맡고, 상고심인 대법원은 그렇게 정해진 사실 위에서 법규의 해석·적용이 올바른지 등 ‘법률’ 판단을 한다는 얘기다. 형사소송법도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형사소송법 제308조)며 법령 위반만 상고이유로 규정(제383조)하고 있다. “사실의 인정은 사실심의 전권”이라는 선언도 분명하다.
원칙은 그러한데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선 대법원이 항소심의 사실판단을 뒤집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그럴 때 판결문에 쓰는 이유가 항소심의 ‘채증법칙 위반’이다. 기실, ‘채증법칙 위반’은 법전 어디에도 없다. 다만 경험칙이나 논리칙 등 채증법칙도 하나의 법칙인 만큼 이를 어기면 법령 위반과 마찬가지로 ‘적법하게’가 아니라는 설명은 가능하다. ㄱ, ㄴ, ㄷ 등의 사실과 A라는 법규에선 논리상 a라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하급심이 b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면 최고법원이 바로잡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누가 봐도 뻔한, 상식과 논리에 턱도 없이 어긋나는’ 잘못만 있다면 일은 쉽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 경계는 불분명하다. 어디까지 사실 판단이고 어디부터 법률 판단인지도 흐릿하지만, 무엇이 상식(경험칙)과 논리에 어긋나는 것인지도 이견이 생긴다. ‘누가 봐도 뻔한 잘못’이 아니라 ‘내가 보기엔 이상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전권인 사실 문제에 개입했을 때 벌어지는 위험은 그런 경우에 많다.
대법원은 2009년 쌍용차 대량 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하면서, 항소심인 서울고법과는 정반대로 사실을 판단했다. 그렇게 하자면 항소심의 사실 판단이 ‘경험칙과 논리에 어긋나는’ 잘못이어야 할 것인데, 정작 판결은 그런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기보다 ‘우리는 이렇게 본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판결 뒤에도 대법원의 사실 인정이 되레 잘못이라는 말이 잇따른다. 그렇게 대법원이 명백한 사실오인을 범했다거나 제대로 사실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따위 지적을 받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고통을 살피지 않은 채 경영권만 일방적으로 편든 것도 잘못이지만, 최종 판정자로 논란을 정리하는 권위는커녕 괜히 끼어들어 논란만 키우는 모습 역시 정상은 아니다.
대법원이 여중생을 성폭행했다는 40대에게 1·2심과 달리 무죄 취지로 판결한 것에도 비슷한 비판이 나온다.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본다면 입증이 덜 된 유죄 판결은 바로잡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당사자와 증인들을 직접 보고 물어가며 판단할 기회도 없었던 대법원이 서류만으로 하급심의 사실판단을 뒤엎으려 한다면, 그만큼 이유와 논리가 충실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채 반발과 논란을 사면서, 판결에 대한 신뢰만 추락했다. 하급심 불신으로 상고가 늘어나면 재판만 길어지게 된다. 그러고선 사건이 많다며 대법원 아래 따로 상고법원을 두자고 하니 이상한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대법원의 의도에 대해선 의심하는 이들이 많은 터다. 정책법원이 되겠다면서 한편으론 상고법원을 통해 하급심을 계속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쌍용차나 와이티엔 판결에서 드러난 대로, 사회적 약자 배려나 언론 독립의 가치 대신 경영권만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대법원의 지금 태도는 우리 사회의 가치와 기준을 제시한다는 정책법원의 이상에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생각을 강요하려 하급심의 사실판단에 억지로 개입하는 것 역시 사법불신을 부추기는 일이다. 자제할 일이 아닌가 싶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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