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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6 18:42 수정 : 2014.12.17 15:23

정정훈 변호사

‘서울시민인권헌장’ 사태는 박원순 시장의 사과와 농성단 참가자들의 농성 종료로 일단락되었다.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경력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과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갈등의 조정자로서 사명감 사이에서 밤잠을 설쳤고, 한동안 말을 잃고 지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사과문이다. 그의 고민이 깊었음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작은 인연으로 지켜봐 온 박원순 시장은 ‘원칙’과 ‘실리’를 모두 중시한다. 말하자면 ‘원칙 있는 실리’가 그의 스타일이다. 박원순 시장은 가족여행 대신 8시간 동안 직접 차를 몰고 팽목항으로 가서 유족들을 위로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원칙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반면에 그는 시민운동의 실용노선을 강조하고, 민간 기부단체를 운영하면서는 재벌 기업인들을 만나 통 큰 기부를 받아 오는 실리주의자이기도 하다. ‘원칙주의자’이자 ‘불도저’라는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런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민인권헌장’ 사태에서 박원순 시장은 원칙도 실리도 얻지 못했다. 그의 선택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성소수자 단체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6일 오전 서울시청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보자면, 동성애 쟁점은 정치인에게 민감한 주제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안전한 방법은 논쟁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 것일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이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보편적 차별 금지 원칙에 대해서는 지지하지만 사회 여건상 동성애를 명백하게 합법화하거나 지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시민사회단체가 역할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동성애 차별 문제를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운동’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편리하고 안이한 이분법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였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이 정치의 문제이듯이, 동성애자 인권의 문제도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였다. 정치와 운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권의 의제를 다루는 것일 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의 조정자’라는 명분으로 자신에게 던져진 정치적 문제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지자체장은 ‘갈등의 조정자’여야 한다는 원칙을 박원순 시장은 수차례 반복해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그 갈등에 직면해야 한다. 정치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으로 보이는 문제를 조정 가능한 갈등으로 바꾸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합의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갈등 있는 현실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했다. 동성애자 차별 금지는 보편적으로 선언된 인권의 수준이다. 동성결혼 합법화나 동성애자 입양 문제 등의 논쟁적인 문제가 아니라 매우 낮은 수준의 원칙을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차별금지 문제를 동성애자 지지/반대의 문제로 전환해 해결 불가능한 갈등의 국면으로 몰아넣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장 박원순은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동성애자 차별 금지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일부 기독교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결과 갈등은 ‘조정’되지 못하고 ‘조장’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정치인으로서도 ‘원칙 있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라는 그의 블로그 제목이 그것이다. 함께 꿈을 꾸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 이번 ‘서울시민인권헌장’ 사태는 정치인 박원순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묻고 있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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