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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7 18:39 수정 : 2014.12.17 18:39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 나는 저 망루로 올라갈 거요. 그래서 이 세상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어둑시니를 내려다보려 하오. 어둑시니 맞설 수 있는 것은 불가사리뿐이오. 우리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 어둑시니라면 불가사리는 저들을 향한 우리의 분노라오.”

12월13일 새벽, 내가 내년에 무대에 올릴 인형극 대본의 마지막 대사를 쓰고 있을 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김정욱이 70m 굴뚝 위에 올랐다. 그 사실을 아침이 돼서야 에스엔에스를 통해서 알게 된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새벽에 완성했던 대본을 지웠다.

20년간 우리 인형극은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는 ‘가난한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인형극단원인 공부방 청소년과 청년들은 새 인형극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면해야 했고, 그 속에서 현실에 맞설 힘을 얻었다.

재개발 이야기를 다룬 창작인형극 <6번길을 지켜라 뚝딱>의 무대가 완성돼가던 2009년 1월에는 남일당 참사가 일어났고, 백석의 <개구리 한솥밥>을 인형극으로 만들었던 2011년에는 4대강 문제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싸움이 벌어졌다. 인형극이 연대와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라는 우리는 인형극 무대를 끌고 남일당 골목, 대한문 앞, 양평 두물머리와 강정마을을 찾았고 현장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우리는 그것이 예술의 또 다른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지금까지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수도 없이 목도해야 했던 2014년의 현실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노숙과 단식을 하고,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올라야만 하는 세상에서는 희망을 은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책에서 본 불가사리가 떠올랐다. 온갖 쇠를 삼키던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가 말이다. 군역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내가 밥풀을 뭉쳐 만들었다는 불가사리. 지배계급에게는 위협이었지만 민중들에게는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었을 불가사리로 인형극을 만들기로 했다. 불가사리가 맞설 상대로는 ‘어둑시니’를 골랐다.

어릴 적, 이북이 고향인 친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어둑시니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어둑시니는 사람이 겁을 먹고 올려다보면 볼수록 몸집이 커져 나중에는 사람을 삼켜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 클 때까지도 혼자 밤길을 지날 때면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나는 오늘의 어둑시니를 가난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나와 내 가족만 살겠다는 이기심으로 그렸다. 그래 놓고 보니 지금 여기가 진짜 어둑시니 세상이었다. 어둑시니는 가난한 민중들마저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로, 세대별로 갈라놓았다. 어둑시니한테 먹혀 함께 사는 법을 잊은 이들은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 길 위에 서고, 어둑시니와 맞서기 위해 허공으로 오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광화문과 구미, 밀양과 강정 그리고 평택과 이 땅 곳곳에서 불가사리가 깨어날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굴뚝에 오른 날, 이창근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작게 보입니다. 눈과 코와 입이 작은 점으로 보입니다. 굴뚝 위 우리도 작게 보이겠지만 당신들도 무척 작아 보입니다. 신기하게도 당신들의 떨리는 어깨 진동이 커 보입니다. 하루 종일 그곳 지키는 작은 신들께 고개 숙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어둑시니를 이기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훌쩍 넘긴 겨울밤, 그들이 굴뚝 위에서 어둑시니와 맞서고 있을 때, 나도 다시 어둑시니와 불가사리를 불러냈다.

내년 4월에 무대에 올릴 우리의 인형극은 굴뚝에서, 전광판 위에서, 길 위에서 어둑시니와 맞서는 불가사리 이야기가 될 것이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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