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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1 18:43 수정 : 2014.12.21 20:40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12월 전쟁설’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12월14일 오전 4시30분에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쳐들어온다는 황당한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비웃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우리는 12월에 한국이 ‘전쟁 상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보여준 것은 한마디로 전쟁의 논리다. 이석기를 비롯한 몇 명의 행위를 ‘내란음모’로 규정하려고 했을 때부터 그랬지만, 단순히 통진당에 대한 탄압이 목적이라면 국가보안법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굳이 정당의 위헌 여부까지 따지게 한 이유는 그들을 ‘범죄자’가 아니라 ‘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는 국내 정치의 구도인 ‘보수-진보’ 프레임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보수 세력이, 국정원에서 개발한 ‘대세(대한민국 세력)-반대세(반대한민국 세력)’라는 프레임을 통해 국내정치 차원의 대결을 내부와 외부 사이의 대결로 바꿔놓으려 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헌재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통진당이 추구하는 목표를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단정하는 이유도 그들이 외부의 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의 논리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다. 서독의 기본법(헌법)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원래 ‘전투적 민주주의’라고 불리는데, 가치중립적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자유의 적을 위한 자유는 없다’는 말로 표현되듯이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비관용을 그 핵심으로 한다. 이런 개념이 등장한 배경에는 나치즘 경험, 즉 히틀러 독재를 막을 수 없었던 바이마르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대중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대중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독재자를 지지해 ‘민주주의의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기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헌법재판소와 같은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헌재가 벌이는 이 전투는 결국 독재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로부터 헌법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기도 한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헌법재판소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고 정당 해산에 관한 권한이 부여된 것은 4·19혁명 직후에 이루어진 개헌을 통해서였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1963년에 다시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헌법재판소는 일단 사라졌다가 1988년 개헌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다. 헌재가 없는 동안 정당의 위헌 여부는 대법원(또는 헌법위원회)이 판단하게 돼 있었다. 말하자면 헌재는 4·19 혁명과 6월 민중항쟁이라는, 독재에 맞선 대중적 항쟁의 산물이었고, 독재자에 의해 헌법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가 헌법이라는 형태로 물신화되며 헌재가 그 헌법의 수호자로 등장하게 될 때, 민주화의 주체였던 대중으로부터도 민주주의는 격리된다. 대중도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되는 것이다.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마자 ‘혁명적 국가긴급권’이라는 논리를 동원해 쿠데타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헌법학자 한태연이 다름 아닌 4·19 혁명 직후 1960년 개헌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4·19 혁명의 주체들이 공산주의를 선택할지도 모르기에 그런 대중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군사쿠데타도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헌재가 지키는 것은 헌법이다. 그럼 민주주의는 누가 지킬까?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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