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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3 18:43 수정 : 2014.12.23 21:39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궁금하다. ‘그들’은 학창 시절 친구나 후배들과 어떻게 지냈을까?

명문 집안 출신에, 수학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축구도 잘하고, 힙합도 잘하는 ‘가’. 그는 모든 여자아이들이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면 좋아할 거라 생각했을까? 차라리 안아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까? 공부 잘하고 야무진데다 갑부 집 따님이기도 한 ‘나’. 그는 과자 심부름을 시켰는데 까서 주지 않고 봉지째 준다고 후배의 무릎을 꿇렸을까? 담임이 호출하니까, 교장에게 아빠 비서가 전화해서 선생님과 후배들 입단속을 시켰을까? 카리스마 작렬에, 아버지의 후광까지 빛나는 ‘다’. 그는 다른 후보의 좋은 공약들을 적당히 짜깁기해 학생회장에 당선되었지만 일년 내내 제대로 지킨 공약은 하나도 없었던 것 아닐까? 그러다 뭔 일 생기면 회의는 하지 않고 중학교 때 친했던 다른 학교 친구와 후배 3명이 챙겨주는 대로 수첩에 메모해서 읽기만 했을까? 제 잘못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학생회 임원들 야단치고, 애꿎은 학생들 탓만 했을까?

궁금하다. 요즘 혁신학교에서 ‘그들’이 이런 짓 했으면 친구나 후배들은 어떻게 나왔을까?

어설프게 예쁜 후배 쓰담쓰담 했다가 나중에 후배가 선생님에게 알리면서 ‘가’는 단단히 혼쭐나지 않았을까? 학생부장 선생님의 특별면담에 이어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교육까지 받고 나니, 다시는 여자애들 찝쩍댈 생각 안하고 축구와 수학을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무릎 꿇으라는 ‘나’의 말에 후배는 ‘아니,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니고, 챙겨다 주면 고맙단 소리는커녕 뭔 소리요?’ 하며 대들지 않았을까? 그러자 ‘나’는 건방지다며 후배 멱살을 잡고, 후배 친구들이 담임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판이 커지지 않았을까? 아빠 비서가 교장에게 전화했다가 혼만 나고, 오히려 부모가 모두 학교로 호출당해 그동안 가정에서 아이를 어찌 양육했는지, 앞으로 가정교육을 어찌할 것인지 얘기하지 않았을까? 이리하여 정신이 번쩍 난 그는 집에서 아빠 비서들에게 함부로 구는 동생들을 혼내지 않았을까? 도무지 불통인 ‘다’에게 소통을 촉구하는 글과 댓글들이 누리집 자유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지 않았을까? 대의원들은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서명지를 돌리고, 급기야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열려, 결국 ‘다’는 공개사과와 함께 학생회의 민주적인 운영을 약속하지 않았을까?

몇십년을 뛰어넘는 상상은 즐겁지만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은 냉정하다. 멘토가 아니라 슈퍼갑이 된 교수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라 찌질한 갑이나 상처받은 을들을 길러낼 수 있다. 오너 리스크가 대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뒤흔들 수도 있다. 공주 리스크가 한겨울에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데 머물지 않고 나라를 결딴낼 수도 있다. 세월호와 함께 아이들이 가라앉는 과정에도 ‘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몇몇만이 아니다.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똬리 틀고 뜬금없이 나서는 어두운 그림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 학교에서 양산되고 있다. 그런 학교를 바꾸는 일은 20년, 30년 후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이제 혁신학교를 넘어 모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고 고민을 나누고 지지고 볶기도 하면서 성장의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가게 하자. 입시제도와 사회 구조를 핑계 대지 말고, 모든 아이들이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사람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존재다’, ‘혼자는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백두대간도 완주할 수 있다’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지금의 학교를 바꾸어 보자. 교육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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