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8 18:46
수정 : 2014.12.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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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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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미국의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 시작되어 미국적 예외라고 불리던 사법심사는 이제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국가에 따라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따지는 사법심사의 주체가 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헌재도 역사적 사건들에 최종 선고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헌재가 갖는 강력한 권한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특히 이번 통합진보당 사건처럼 시민이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국회의원을 9인의 임명직 재판관이 자격상실 시키는 현실은 어떻게 가능할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의 최고 원천은 선거라는 제도적 절차에 따라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직접 위임받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체제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당성의 근거가 존재한다. 바로 제도적 정당성이다. 예컨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의 재판관은 누구도 유럽 시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지만 높은 지지 속에 그 정당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적으로 선출된 유럽의 정부보다 더 높은 지지를 누리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민주적 정당성만이 유일하고 항상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헌재가 근거하는 제도적 정당성은 전문성, 공정성, 중립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 이번 정당해산 결정이 비판받는다면 이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완전하게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성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심판인 이번 사건을 헌법정신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을 통해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 결정으로 만드는 데 있었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은 헌법정신에 대한 논의보다 북한에 대한 인용이 압도적이어서 우리만의 특수성에 매몰되어 세계사적 맥락의 보편적인 설득력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리가 맞서야 하는 특수한 현실이지만 북한을 넘어서 나아갈 미래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이 특수한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과 같다.
공정성은 다양한 증거와 반대 의견을 두루 고려하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신뢰감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념을 거칠게 드러내면서 누구도 몰랐던 통합진보당의 숨은 의도를 우리가 읽어낸다는 식의 주장은 헌재의 최종 결정문이라기보다 검사의 공격적인 구형을 보는 것 같고, 앞으로 이 구형을 둘러싼 재판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중립성 문제는 우리 헌재의 가장 심각한 결함일 것이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 3인씩 재판관을 지명하는 헌재의 구성방식은 집권여당의 뜻을 구조적으로 과대 대표되게 만든다. 더구나 헌재소장 및 국회 지명 후보자만 국회 인준 표결을 거치고 나머지 재판관의 경우 국회 표결 없이 임명하는 선출방식은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 지명을 쉽게 만들어 헌재의 구조적 중립성을 저해한다.
제도적 정당성은 민주적 정당성과 달리 시민들의 직접적인 이해로부터 벗어나 중립성을 지키면서 전문적이고 공정한 결정들을 통해 쌓아가는 후천적인 정당성이다. 따라서 헌재의 결정이 이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면 끊임없이 정당성을 의심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혹자는 60%가 넘는 국민이 헌재의 이번 결정을 지지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국민적 다수를 따르는 결정이 헌재가 하는 일의 전부라면 차라리 여론조사나 국민투표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헌재는 국민의 평균적 법감정을 반영해야 하는 역할과 함께 다수 의사를 대표해 선출된 대통령 및 의회를 견제하면서 그렇지 못한 소수 의견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요구를 반영하는 치열하고 고뇌 어린 결정만이 결국 비판적인 소수도 승복하게 만들 수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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